딸아, 고맙고 사랑해
딸아, 고맙고 사랑해
  • 신은진 한국독서심리상담학회장
  • 승인 2022.06.16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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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그릇에 담긴 우리 이야기
신은진 한국독서심리상담학회장
신은진 한국독서심리상담학회장

 

‘나는 지금이 가장 행복합니다.’ 살아오면서 언제가 가장 좋았는지 질문해 오는 사람들에게 하는 답이다. 행복의 원천이 무엇일까 생각해보곤 한다. 막연하게 원하기만 했을 뿐 행복하다는 벅찬 감정을 느껴본 경험이 적다. 내 마음에 집중하게 되면서 내가 언제 행복한지를 알게 되었다. 지금이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따뜻한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 내 마음은 따뜻하고 정신은 선명하게 빛난다. 
매일같이 그림책 택배가 오던 때가 있었다. 어느 날 막 하교한 딸이 교복도 벗지 않은 채 택배의 포장을 풀고는 선 채로 그림책 한 권을 읽어 내려갔다. 채인선 작가의 ‘딸은 좋다’였다. 우리는 선 채로 그림책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의 경험과 딸의 경험에 대해서 그리고 엄마에 대해서……. 부모님의 정서적 돌봄 부재에 대한 슬픔이 있던 나에게 딸의 공감은 가슴 저리도록 뭉클한 감동으로 다가와 10여 년이 지난 지금도 내 마음에 살아 움직인다. 
나는 딸이 좋다는 말을 공공연하게 하지만 아들 앞에서는 하지 않는다. 장성한 아들이지만 서운한 마음이 들까 배려해서이다. 기억나는 드라마가 있다. 1990년대 61%라는 최고의 시청률을 보인 ‘아들과 딸들’이다. 제인 오스틴이라는 작가가 나올 수 있었던 것도 이러한 드라마의 흥행도, 페미니즘의 운동도 시대와 공간에 상관없는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불합리한 처우를 받아온 역사의 흔적이라는 생각을 한다. 
색연필 그림이 주는 편안함과 일상에서 볼 수 있는 그림의 장면들은 옛 사진첩을 보는 것 같다. 엄마의 선글라스와 모자를 쓰고 익살스럽게 밝게 웃고 있는 표지 속의 아이가 너무나도 사랑스럽다. 딸 낳으면 비행기 탄다는 이야기로 시작되는 이 책은 딸이 성장하며 부모와 함께 한 모습들을 그려나간다. 엄마와 목욕탕에 함께 갔던 너, 아버지의 카메라 앞에 모델로 서 주었던 너, 도란도란 이야기 친구가 되어주었던 너, 수많은 쪽지와 편지로 마음을 표현했던 너,  엄마와 아버지의 시간 속에 언제나 함께였던 딸의 모습이다. 
최근 인상 깊게 본 드라마가 있다. 옴니버스 형식의 드라마였는데 주인공이 한 사람이 아닌 삶을 주제로 출연진 모두가 자신이 독립된 이야기를 보여주었다. 가정도 마찬가지이고 인류도 마찬가지다. 주인공은 한 명이 아니라 모두가 주인공이다. 함께 하지만 각자가 자신의 삶을 살아가며 그 삶은 서로 연결되어 있고 세상이 된다. 어느 것 하나 귀하지 않은 것이 없다. 
어릴 적 남자로 태어나지 않아 환대받지 못한 나는 성장하며 많은 시간들을 분노를 억압하느라 소모했다. 딸을 키우며 이렇게 예쁜 딸에게, 좋다, 사랑한다, 예쁘다 말하지 않은 이유가 무엇인지 화가 나기도 했다. 축적된 마음의 상처는 치료된 것 같다가도 언제고 다시 곪아 터져 버리기를 반복했다. 나를 찾기 위해 보낸 시간 속에서 남동생을 ‘아들’이라고 불렀던 나의 우매함을 발견하고 울었고, 인지하지 못한 억압을 발견하고 화들짝 놀라 수치감을 느끼기까지 했다. 
많은 정신분석가가 정신증과 신경증의 원인이 유아기에 그들의 투사를 담아줄 수 있는 엄마를 갖지 못해서라는 사실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많은 연구와 그것을 기반으로 인류의 발전과 삶의 변화를 촉구했다. 하지만 지금도 상담 현장에서 병리적인 증상들을 가지고 찾아오는 많은 이들이 여전히 어린 시절 마음의 상처를 의식하지 못하고 오래된 무기력과 우울 속에 살고 있음을 만난다. 참 좋구나, 예쁘다, 사랑스럽다. 고맙다와 같은 조건 없는 작고 따뜻한 말들이 부재함을 보며 공허하다. 하지만 나는 오늘도 내가 만나는 모든 딸과 아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딸아, 아들아, 나는 너희가 어떤 사람이든 상관없이 너희를 좋아하고 사랑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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