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의 집
존재의 집
  • 신미선 수필가
  • 승인 2022.06.14 19:3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生의 한가운데
신미선 수필가
신미선 수필가

 

너도나도 즐거운 맛있는 점심시간. 유치원 식당에서 여섯 살 난 남자아이가 식판을 앞에 놓고 우두커니 앉아 있다. 다른 아이들은 고사리 같은 손에 어설픈 숟가락질로 연신 밥을 퍼 입에 넣고는 오물거리는데 한 아이만이 뚫어지게 식판을 쳐다보는 것이다. 평소 반찬 투정은커녕 식판을 받자마자 무섭게 밥을 먹던 식성 좋은 아이였다. 무슨 일인가 싶어 살짝 옆으로 다가가 물었다.

“왜 밥을 안 먹고 있어? 반찬이 마음에 안 드니?” 아이가 대답한다.

“국 속에 들어있는 물고기한테 미안해서 못 먹겠어요.”



그렇구나. 오늘의 식단은 밥과 세 가지의 반찬, 그리고 어묵탕이 나왔다. 영양 선생님은 아이들이 좋아하는 붕어 모양의 어묵을 넣어 국을 끓였는데 이 녀석은 그 어묵이 자신을 향해 동그랗게 눈을 뜨고 있어서 먹지 못하겠단다. 소위 유아교육에서 말하는 유아기적 인지발달 단계 중 `물활론적 사고'를 이 아이가 보여준 셈이었다. 나름대로 아이의 시선으로 상황을 듣고 나니 한편으로 이해가 되기도 했다. 그래도 아이를 굶길 수는 없으니 아이의 눈높이에 맞는 말로 회유책을 쓰는데 갑자기 아이가 국그릇을 내려다보며 `너를 먹게 되어 미안해' 하는 것이 아닌가. 그 마음 씀씀이가 하루 내내 따뜻함으로 맴돌았다.

유치원에서 일하면서 가장 보람을 느끼는 때는 바로 이런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행동과 서로 주고받는 예쁜 말들이다. 아침에 만나면 늘 웃는 얼굴로, 누가 시키지 않아도 서로 좋은 말을 주고받는다. 예쁜 옷을 입고 온 친구에게는 꽃 같다며 관심 가져주고 누군가 장난감을 양보해주면 고맙다고 한다. 아웅다웅 작은 다툼도 더러는 일어나지만 한 아이가 미안하다고 하면 덩달아 다른 한 아이도 괜찮다며 어느새 서로는 손을 맞잡고 놀고 있다. 그런 모습들을 보고 있노라면 이대로만 아이들이 자라준다면 더할 나위 없을 텐데 싶을 때가 종종 있다.

며칠 전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 중인 학창시절 친구와 전화통화를 하다가 그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해가 거듭될수록 아이들 대하기가 점점 더 어렵다는 것이다. 이유인즉슨 아이들의 대화를 듣다 보면 절반이 욕에 가까운 말들이고 그 수위도 엄청 높게 느껴진다는 것이었다. 어디서 그런 말들을 배우는지 물어보면 하나같이 저절로, 또는 핸드폰을 들어 보이며 뭐가 문제냐는 식이란다. 전문가들 역시 인터넷 방송이 늘어나면서 선정적이고 폭력적인 콘텐츠에 청소년들이 자주 노출되기 때문이라고 했던 어느 신문 기사가 떠오른다.

독일의 철학자 하이데거는 그의 책 『숲길』에서 `언어는 존재가 드러나는 장소이다. 언어를 어떤 장소로 규정한다면, 존재는 그 언어 안에 거주하는 것이다.'라고 적었다. 그러면서 언어를 `존재의 집'이라고 표현했다. 그의 말을 나름대로 해석하자면 그 사람이 사용하는 언어는 그에 대한 첫인상이고 품격이라는 생각을 한다. 나의 존재를 각인시키는 가장 첫 번째는 언어이며 그 언어를 아우르는 울타리에는 문자를 포함한 타인 간 주고받는 대화가 가장 큰 비중일 것이다. 말 한마디도 조심해서, 건전하고 올바른 언어습관이 절실한 요즘이다.

오늘도 한 아이가 집으로 돌아가는 유치원 버스를 기다리다 옆에 서 있는 친구에게 한마디 한다. “친구야! 오늘 너랑 놀아서 참 재미있었어.” 친구가 화답한다. “나도 네가 있어서 즐거웠어. 내일도 우리 사이좋게 놀자.” 참 좋은 말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