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치만큼 협치도 중하다
법치만큼 협치도 중하다
  • 권혁두 기자
  • 승인 2022.06.12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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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권혁두 국장
권혁두 국장

 

대한민국은 `법치국가'다. 추상같아야 할 법이 권력과 돈 앞에서 꼬리를 내리는 장면이 심심찮게 목격돼 순도를 의심받기는 하지만, 적어도 법치를 국가경영의 요체로 삼는 나라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런데 누구도 부인못할 법치 국가의 새 대통령이 새삼스럽게 법치를 강조하고 나섰다.

윤석열 대통령은 얼마 전 극우단체의 문재인 전 대통령 사저 인근 시위와 관련해 질문을 받고는 이렇게 말했다. “대통령 집무실 앞에도 시위가 허가되는 판이다. 다 법대로 되지 않겠는가”. 법이 허용한 집회를 대통령이라고 막을 수 있겠느냐는 취지였을 터이다.

검사를 지나치게 중용한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미국 행정부를 사례로 들며 “이런 게 법치”라고 반박했다. 검사 출신들이 나라를 다스리면 법치가 바로 선다는 논리도 공감하기 어렵지만 대통령이 매사를 법치와 연계하고 강조하는 모습은 미덥잖다. 아직도 법을 집행하던 검사 DNA에 갇혀있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든다.

윤 대통령과 대선 캠프에서 일했던 금태섭 전 의원이 “대통령은 법을 따지는 자리가 아니고 정치를 하는 자리”라고 일침을 날렸다. 대통령이 새겨들을 말이다. 대통령은 법리를 따지는 검사가 아니라 국가 경영자의 눈으로 사안을 살펴야 한다. 사저 시위에 대해서도 합법을 강조하기에 앞서 무고한 마을사람들이 시위대의 모진 함성으로 겪는 고통부터 보듬었어야 한다.

시위 단체에 자제를 요청하는 한마디 정도는 추가됐어야 한다는 말이다. 대통령이 인정한 `합법적' 시위는 다른 곳으로 번질 지도 모른다. 진보 성향 유튜버들이 문 전 대통령 사저 시위가 중단되지 않으면 박근혜 전 대통령 사저 앞에서 보복 시위를 하겠다고 벼르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는 이런 소모적이고 분열적인 사태를 확대하는 게 아니라 막고 조정하는 일이다.

검사 중용에 대한 반대 여론에 대해서도 절차의 합법성이나 엉뚱한 법치 논리를 동원해 반박할 것이 아니라 우려를 받아들이는 자세부터 보였어야 한다.

“국민의 우려를 깊이 새기고 성과로 답하겠다”는 말이 그렇게 하기 어려운가? 여당과 보수언론까지 제기하는 비판을 송두리째 부정하고 강변하는 모습에선 지난 정권의 오만이 고스란히 오버랩 된다. 법치가 협치를 집어삼키는 소리가 갈수록 커진다.

상앙(商鞅)은 중국 전국시대를 제패한 진(秦)나라의 부국강병책을 주도했던 개혁가다. 당대를 대표하는 법치주의자 였다. 모든 사안은 법에 따라 규정하고 왕을 뺀 만백성은 법 앞에서 평등해야 한다는 게 그의 정치 철학이었다. 그는 태자의 위법행위까지 들춰내 태자의 스승 격인 태사에게 얼굴에 낙인을 찍는 중벌을 내렸다. 지위를 가리지않는 엄격한 법 집행과 신상필벌 원칙은 백성의 갈채를 받았고 국가의 신망을 높였다.

그러나 그는 연좌제 같은 악법도 강화했다. 10가구나 5가구를 단위로 묶어 조세와 병역을 관리하고 그 안에서 범죄가 발생하면 공동 책임을 지도록 했다. 이웃과 친지의 허물을 관에 알리는 밀고가 성행했다. 세금을 물릴 가구 수를 늘리기 위해 부자와 형제가 한 집에 기거하지 못하게도 했다.

그를 무한 신뢰하던 왕이 죽고 그에게 수모를 당했던 태자가 왕위에 오르자 복수극이 시작됐다. 상앙은 왕의 체포령을 피해 망명을 시도하고 독자적인 세력화를 꾀했으나 실패하고 죽임을 당한다. 도망치던 그가 국경의 한 여관에 묵으려하자 주인은 신분 증명서가 없으면 들일 수 없다며 내쳤다.

모든 백성은 국가가 발급한 신분증이 있어야 움직일 수 있도록 한 법은 그의 작품이었다. 여관을 나서며 상앙은 이렇게 탄식했다고 한다. “내가 만든 그물에 내가 걸려들 줄이야”. 매사를 법으로 재단하는 법치 지상주의는 훗날 부메랑이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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