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弔旗)를 내걸며
조기(弔旗)를 내걸며
  • 박영자 수필가
  • 승인 2022.06.09 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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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박영자 수필가
박영자 수필가

 

느긋하고 여유로운 아침이다. 토요일부터 월요일인 오늘 현충일까지 이어진 황금연휴가 보너스라도 탄 듯 반갑다. 집안 정리를 하고 밀린 일도 하며 헐렁하게 지낸 뒤에 맞은 오늘이니 몸도 마음도 가볍다.

국기를 챙기고, 기폭을 내려 조기(弔旗)를 내 걸며 혼자 피식 웃음이 나왔다.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조기 게양 법을 가르치느라 애를 먹었던 일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1학년 아이들에게 `조기(弔旗)' 라는 말이 어찌 제대로 이해되겠는가. 아이가 집에 가서 조기를 걸어야 한다니까 먹는 조기를 내 건 엄마가 있었다는 웃지 못 할 에피소드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늘 그랬듯이 좀 있으면 보나마나 관리실에서 국기를 걸어 달라는 안내방송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웬일인지 오늘은 그런 방송도 없다. 아파트 뒷동을 바라보니 국기를 내 건 집은 가뭄에 콩 나듯 몇 집 안 된다. 요즈음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태극기를 내 걸지 않고 온라인상에 태극기를 올리는 것이 유행이라더니 그래서 그런 것일까. 젊은이들만 사는 아파트가 아니니 그것도 말이 안 된다. 내려다보이는 지상 주차장에는 빼곡하던 차들이 빠져나간 빈자리가 휑하다.

국기를 내 걸고 안 걸고 가 뭐 그리 대수이겠는가. 현충일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이 문제이다. 계절은 초여름, 초록이 싱그러운 좋은 때이고, 오랜만에 코로나비상도 완만해졌으니 관광지로 내닫는 것은 인지상정일 것이다. 제주도를 비롯한 관광지가 붐비고 인천 공항을 빠져나간 사람 수는 또 얼마나 많을까. 코로나로 움츠렸던 음울한 시간을 벗어나 3일 동안 이어지는 황금연휴이니 더 말해 무엇 하랴.

자칫 우리들의 마음속에 현충일의 의미가 퇴색되어 그저 `놀러가는 날'이라고 인식 되어가는 것은 아닐까가 염려스럽다. 우리 세대들은 현충일은 가무(歌舞)를 금하고 경건하게 지내는 날로 자리매김 했었다.

내가 열 살이 되던 1950년 민족상잔의 6ㆍ25전쟁이 터졌고 그때 국군 137,899명과 참전 UN군 37,902명이라는 어마어마한 군인들이 전사했다. 그 분들이 아니었으면 내가 지금 여기에 존재하지 않을 것이고, 지금의 이 나라에서 행복을 누릴 수 있겠는가. 나라를 위해 목숨 바친 6ㆍ25 참전용사들과 호국 영령들을 추모하고 기념하기위해 지정된 국가 기념일인 현충일의 의미를 다시 새겨 보고 그 의미가 희석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TV로 생중계 되는 현충일 추념식을 지켜보았다. 비가 오는 가운데 우비를 입고 참석한 대통령 내외분과 각계 인사들의 숙연한 분위기가 옷깃을 여미게 한다. `호국 영령들이시여, 우리는 당신들을 영원히 기억할 것이며, 하늘나라에서 우리 선량한 국민들과 대한민국을 보살펴 주시고 젊은이들에게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을 잘 이끌어 나갈 수 있도록 용기와 힘을 주시옵소서.' 하는 기원이 절로 우러나왔다. 국가유공자들을 위문하는 대통령 내외의 모습도 흐뭇한 광경이었다.



숙연해지는 아침

그 숭고한 희생의 토대위에

오늘의 번영이 있는데

말로만 하는 호국보훈

실종된 애국심은

어디 가서 찾을까

행락을 쫓는 자동차 행렬

호국을 위해 순국하신 영령들의

통곡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조위제 씨의 현충일에 부치는 시가 내 마음을 대변한다.



“나라가 있고서야 내가 있고, 사랑하는 내 가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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