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오(Rio)의 결투
리오(Rio)의 결투
  • 충청타임즈
  • 승인 2007.08.20 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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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승 환 충북대학교 교수

그런 일이 있을 줄은 미처 생각 못했다. 내가 미국의 편에서 미국의 입장을 지지하는 발언을 하게 될 줄이야! 2007년 8월 3일 리오데자네이로대학 토론장에서의 일이다. 약간 늦게 토론장에 들어선 나를 보자던 것은 프랑스인 알랑이었다. 파리에 살면서 스위스 후리보르그 대학으로 출퇴근을 한다는 마음씨 좋은 알랑(Alain)은 이번 주제의 토론을 해 주었으면 한다는 것이다. 형형색색의 눈들이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거절할 상황이 아니었다. 그런데 예감은 심상치 않았다.

발표자는 두바이대학의 압둘이었다. 논제는 '오리엔탈리즘을 통해서 본 미국문학'이었다. 대체로 아랍 학자들은 미국중심의 세계화와 패권주의를 강력하게 성토한다. 물론 민중운동 하듯이 성토하는 것은 없고, 온화한 미소와 정중한 자세를 유지하면서, '당신들의 관점에 대해서는 대체로 찬성한다'라고 시작해서 '당신들의 사상과 감정을 이해할 수 있다'라는 식으로 끝나는 것이 보통이다.

그 교양 있는 발언의 이면(裏面)에는 치열한 이론투쟁이 전개되는 것은 당연하다. 이런 세계대회의 이론투쟁에서 웃음거리가 되면 학자로서의 정평도 그렇거니와 자기 스스로 세계학계에는 나타나지 않는 정도의 엄격함이 있어서 웃음거리만은 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삼십분 압둘의 발표는 정중했지만,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을 근거지점으로 하여 미국의 아시아 지배전략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공연히 나의 머리가 뻣뻣해지는 느낌이었다. 학회의 토론자는 발표자의 발표에 동의한다거나 잘했다거나와 같은 말은 할 수가 없고, 반드시 문제점을 짚고 반대 의견을 내야 하는 운명이었던 것이다. 아, 어쩐다 엊그제 내 발표가 끝났고 부끄러움은 면했으므로 이틀간 상쾌하던 머리가 찰나에 두통으로 밀려들었다.

브라질 리오데자이네로에서 열린 제 16차 세계비교문학회에서의 일이다. 무슨 문학학술발표대회에서 미국의 지배전략이 나오느냐고 의아해 하실 수도 있겠다. 최근 문학연구의 동향은 문학작품이나 작가를 그대로 연구하는 것은 드물고 역사철학이나 사회문화와 연결해서 설명하는 것이 대세다. 저 유명한 '오리엔탈리즘'을 쓴 에드워드 사이드는 콜럼비아대학 영문과 교수였고, 역시 유명한 '제국'을 쓴 마이클 하트는 듀크대학의 문학교수다. 이들 책에는 문학작품이나 작가 이야기는 거의 나오지 않는다. 이것은 문학이 인간학이고, 또 세계학이라는 사실을 반증하고 있거니와 한국도 연구의 경향이 차츰 바뀌어가고 있다.

6분과의 그 토론장에는 40여명 학자들이 앉아 있는데, 그 중에는 미국인 교수도 분명히 있었고, 또 이란인 교수도 있는 것 같았다. 생각 같아서는 두바이대학 교수 편을 들고 싶었지만, 토론자의 책무를 배반하는 것이어서 할 수 없이 반대토론을 하고야 말았다. 그렇다고 미국의 패권주의를 옹호할 수는 없어서 우회적으로 미국의 인문학 교수들은 미국의 패권주의에 반대하고 있는 이유를 설명함으로써 20분간의 토론을 마쳤다. 실제로 그렇다. 미국의 인문사회학 교수들은 미국의 제국주의와 패권주의를 비판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 이유는 그들이 애국의식이 없어서가 아니라 인문사회학은 인간의 존재를 다루고 인간의 존엄과 진실을 지키려 하기 때문이고 또 패권주의나 제국주의는 그 자체로 나쁜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사상의 역전현상이다. 미국의 좌파 교수일지라도 브라질 리오(Rio)에서는 자동적으로 우파 학자로 낙인찍혔다. 반대도 참이다. 내가 보기에 압둘은 아랍사회의 대변자이며 두바이의 국가이익을 최우선하는 우파 교수임에 분명했다. 그런데 그는 미국의 패권주의를 공격함으로써 국제적으로는 좌파가 되는 것이다.

이처럼 일국가 안에서의 우파는 국제사회에서 좌파가 되고, 일국가 안에서 좌파는 국제사회에서 우파가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참으로 기이한 현상이다. 하지만 현실이 그렇다. 이데올로기가 연출하는 이 역전의 쌍곡선에 모두들 놀라는 눈빛이었다.

그런데 이번 학회에서 전세계의 모든 학자들이 동의한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문학예술의 다양성, 혼종성, 이질성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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