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의 실체
두려움의 실체
  • 신은진 한국독서심리상담학회장
  • 승인 2022.06.02 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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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그릇에 담긴 우리이야기
신은진 한국독서심리상담학회장
신은진 한국독서심리상담학회장

 

기분 좋은 아침 산책길에서 우연히 뱀과 마주했다. 꽤 큰 초록 뱀을 보는 순간 마음도 몸도 얼어붙었다. 시골길에서 6월의 어느 날, 뱀을 만난 건 너무 당연한 일일 수 있는데 나는 갑자기 두렵고 겁이 났다. 문득 만난 두려움의 감정이다. 감정은 목적을 가지고 있다고 아들러는 말한다. 내가 뱀을 보면 두려움과 공포를 느끼는 것은 위험에 대비해 나를 보호하고자 하기 위함이다.

간혹 두려워질 때가 있다. 너무 조용해서; 이것은 조용했다가 갑자기 시끄러워지던 경험이 만들어낸 기억의 반복 같다. 또는 많이 행복해서; 이것은 행복이란 감정이 낯설어 내 것 같지 않은 기분이 들 때가 그렇다. 그 외에도 두려움이란 감정은 과거의 경험이나 본능적인 불안의 느낌이 극대화될 때 그럴 상황이 아님에도 나타난다. 불안과 두려움은 불확실하면서도 모호하게 다가오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중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정신적 어려움의 하나이다.

`곧 이 방으로 사자가 들어올 거야/아드리앵 파를랑주/정글짐북스'는 리노판화로 찍은 그림책이다. 어느 날 사자가 방을 나간 뒤, 호기심 많은 소년이 사자의 방으로 들어간다. 그런데 문밖에서 소리가 들리자 소년은 사자가 오는 줄 알고 침대 아래 숨는다. 하지만 방에 들어온 건 다른 소년이다. 두 번째 소년도 문밖에서 소리가 들리자 깜짝 놀라 천장의 전등으로 숨는다. 하지만 방에 들어온 건 소녀다. 뒤이어 개와 새들이 차례로 방에 들어오고 뒤이어 사자가 오는 줄 알고 방의 구석구석으로 숨어든다. 정작 자기 방으로 들어온 사자는 방이 낯설다. 미묘하게 달라진 자신의 방에 두려움을 느껴 이불 속으로 몸을 감춘다.

들어오고 숨기를 반복하는 단순한 구성의 이야기다. 장소는 한 곳, 사자의 방인데 등장인물은 점점 많아진다. 이야기의 전개가 정말 매력적이다. 하나의 이야기는 등장인물마다의 이야기로 전개될 수 있다. 이제 더 이상 숨을 곳이 없는 것 같은데도 숨어드는 모습이 우리들의 모습이다. 모두는 자신만의 안전한 공간으로 숨어든 우리 같다. 두려움의 대상인 사자마저 자신의 방에서 두려움을 느끼고 이불 속으로 숨어든다. 어두워진 방, 저마다 두려움에 숨어있는 사이를 생쥐 한 마리가 유유히 지나간다.

방 안의 모두는 두려워 숨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모두가 두려워했던 사자마저 두려워한다. 실체가 있든, 실체가 없든 두려움이 존재한다. 숨어있는 소년과 소녀의 모습은 숨은그림찾기처럼 재미있다. 모기와 거미를 ㅤㅉㅗㅈ기도 하고 숨어있는 서로를 발견하고 흥미로워하기도 한다. 한 마리의 새는 개의 코끝으로 자리를 옮기기까지 한다. 두려움에 숨어있을 때에도 새로운 경험을 하는 모습이다.

그림책의 등장인물을 세어보니 열여섯, 각 등장인물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상상하니 재미있다. 사자의 방에 호기심을 갖고 들어왔던 첫 번째 소년은 이후 누군가 방에 들어오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어떠했을까. 천장의 전등에 숨은 소년은 거미를 보고 어떤 기분이었을까. 자신의 방에 돌아온 사자는 거울과 전등, 커튼에서도 작은 변화를 본 사자의 두려움은 어떤 것이었을까. 이야기 속 이야기들이 끝없이 펼쳐진다.

누구는 방에 들어온 것을 후회하고, 누구는 두려움과 정면으로 맞설까 고민하고, 누구는 상상을 더 해 두려움을 키워나갈 것이고, 누구는 방을 빠져나갈 기회를 엿보고 있겠지. 하지만 결국 두려움도 다른 감정들처럼 나의 것이고 내가 만나고 수용해야 할, 나를 위해 만들어진 것이란 건 인정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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