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해지지 마!
약해지지 마!
  • 장민정 시인
  • 승인 2022.05.31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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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장민정 시인
장민정 시인

 

우연히 지인의 사이트에 들어갔다가  문숙 시인의 ‘적자’란 시를 읽었다.
  
‘인생의 절반을 소비했다
날밤을 새운 날도 많았다
남은 거라곤 뉘 집 냄비 받침이나 되어있을 시집 두세 권이 전부다.
그동안 옆집 동갑내기 여자는
5억짜리 아파트 사서 십억을 만들고 십억짜리 아파트 사서 20억을 만들었다
내가 지금 냄비 받침 신세가 된 것은
돈 없어도 배부를 것 같은 시에 홀딱 넘어간 탓이다.’
 
위 시를 한 번 읽고 나는 ‘홀딱’이란 단어에 홀딱 넘어갔다. 모든 시인에게 시는 치명적이다. 시인들은, 아니, 나만 생각해도 ‘돈 없이도 배부를 것 같은’ 시에 매료되어, 아니 홀딱 넘어가 반백 년을 산 것이다. 그리고도 허기져 있는 것이다. 하물며 내로라하는 몇몇 베스트셀러 시인마저 적자 인생을 사는 세태다. 내가 설 곳이 없듯 詩도 설 곳이 빈약해졌다. 애면글면 이어가는 시 창작 교실도 찾는 이가 드문 게 현실이다. 
책상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이 많고 밤을 지새우는 날이 빈번하던 지난날을 한 번도 후회해본 적은 없다. 후회보다는 자랑스러워했을 정도다. 변명 같지만, 돈을 알면 시를 못 쓴다는 말은 불문율에 가깝다. 그렇게 자만하던 생각들이 자꾸 어깃장을 놓고 허물어지는 걸 느낀다. 어렵게 시를 한 편 썼다 해도 개성은커녕 신선함조차 없으니 괴롭기만 하다. 나이 탓으로 돌리며 이젠 그만둬야 하지 않겠나? 구체적으로 생각하곤 한다.
나이만큼 늙는 것이 아니라, 생각만큼 늙는 것이라고 듣기 좋게 누가 말해 준 적이 있다. 나의 생애에서 ‘오늘’이 가장 젊은 날이라고 스스로 일깨우며 위로하기도 한다.
인생이란 소설의 주인공은 바로 “나” 자신 아니던가. 소설처럼 인생도 마침표를 찍기 전까진 누구도 엔딩을 할 수 없다. 100세 시대에 나이는 장애물이 아니다. 포기하지 마라. 기회의 시간으로 바꾼 사람들을 기억하라. 그래 나이는 숫자에 불과한 것, 내게도 아직 한참 많은 시간이 남아 있다고. 
일본의 시인 시바다도요는 젊었을 적에는 독서와 영화와 노래 감상 등 평범한 취미생활로 시간을 보내었고 중년이 되면서 무용을 열심히 했다던가, 아무튼 주방장이었던 남편과 사별 후, 다 늙어서야 아들의 권유로 처음 시를 쓰기 시작했다는데 그때가 92세, 누구라도 헛웃음 칠 나이에 시작한 시쓰기다.
5년 동안 수련하면서 모아둔 시가 시집 한 권에 이를 때 그녀는 장례비용으로 모아둔 100만 엔을 들여 첫 시집 ‘약해지지 마’를 출판하며 등단하게 된다.
긍정적인 마인드와 유머감각 등 호평과 관심은 열화같이 번져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는 행운을 거머쥔 시바다 도요, 일본을 넘어 전 세계로 번역되어 출판되는 꿈 같은 일이 벌어졌다. 98세가 되는 해였다. 98세의 등단 기록은 기네스북에 등재되지 않았나 몰라.
시바다 도요의 시들은 쉽고 다정하다. 위안과 격려를 함께 준다. 그녀의 짧고 간결하면서 담담하기까지 한 시편들을 읽으면 감동에 휩싸이게 된다. 아니, 감동 그 이상이다. 회초리처럼 사정없이 나를 닦달하기도 한다. 이제는 그만 써야지, 그만 해야지, 하루가 멀다고 들볶던 자신을 추스르기로 한다. 시바다도요에 비하면 나는 한참 젊지 않은가? 힘내자, 아자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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