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가다 문득
길을 가다 문득
  • 김경순 수필가
  • 승인 2022.05.31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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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문앞에서
김경순 수필가
김경순 수필가

 

온종일 비가 올 듯 말 듯 애를 태웠다. 이제는 비가 내릴 만도 한데 하늘은 다시 꿩 구워 먹은 소식이다. 아침에 마당을 나오니 풀들이 물기를 머금고 있어 새벽에 비가 왔나하여 반가운 마음에 “밤새 비가 왔나보네.”라며 혼자 소리를 했다. 그때 마침 고추밭에서 풀을 뽑고 계시던 앞집 할머니는 내 소리를 들으셨는지 새벽녘에 내린 비는 병아리 오줌만도 못하다며 혀를 끌끌 차셨다. 농작물을 심어놓고 애면글면, 말라 죽지 않을까 밭을 서성이는 할머니를 보니 나도 모르게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예전 같으면 비가 오든 말든, 농작물이 비들비들 말라 가든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런데 요즘은 주위에서 일어나는 사소한 일들이 그냥 쉬이 넘겨지지가 않는다.  
나도 이제 나이가 들어가고 있다는 반증은 아닐까. 논어에서 이르길 인생에 경륜이 쌓이고 사려와 판단이 성숙하여 남의 말을 순순히 받아들일 수 있어 이순(耳順)이라고 했다. 세 해만 지나면 나도 이순이 된다. 과연 그 말이 틀리지는 않은 듯하다. 물론 내가 사려와 판단이 성숙하다는 말은 아니다. 단지 남의 말을 순순히 잘 받아들이는 것은 맞는듯하여 하는 말이다. 예전 같으면 누군가로부터 충고나 안 좋은 소리를 듣게 되면 파르르 해서는 반박을 하곤 했다. 요즘은 그것도 나에 대한 관심인 듯해 감사하게 여기게 된다. 어쩌면 예전처럼 반박을 하지 못하는 이면에는 번거로움이 싫고 말씨름에서 이길 자신도 없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나이가 들면서 한편으로는 과감해진 면도 있다. 덕분에 혼자서도 거리낌이 없이 하는 일들이 점점 많아졌다. 얼마 전에는 친구의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부고 문자가 왔다. 그리 가깝게 지내는 친구는 아니었지만 왠지 찾아가 위로를 해 주고 싶었다. 예전 같으면 같이 갈 친구를 수소문했어야 옳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러지 않았다. 장례식장에서 혼자 조문을 한 게 처음이었다. 항상 누군가와 함께 휩쓸려 다녀오곤 했던 곳이었다. 장례식장은 평일 점심시간을 조금 넘긴 시간이라 그런지 한산했다. 조문을 하고 혼자 자리에 앉아 있으니 밖에서 일을 보던 친구가 왔다. 혼자 왔냐고 묻는 친구의 얼굴 안에서 조금은 의아하다는 빛이 역력했다. 
또 몇 해 전부터 나는 혼자 하는 여행도 즐긴다. 누군가와 함께 하는 여행보다 혼자 가는 여행에서 나는 매번 만족감이 배가 되는 경험을 한다. 그것은 젊었을 때는 감히 생각지도 못했던 일들이었다. 그러고 보면 나이가 든다는 것은 점점 혼자가 되고 가벼워지기 위해 한 계단 한 계단 내려오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또한 자신에게 주워진 짐의 무게도 점점 가벼워지는 일이기도 하다. 그러고 보면 나이가 든다는 것은 그리 서러워 할 일도 안타까워 할 일도 아니다. 문득 피천득 선생의 <오월>이라는 글이 생각이 난다. 
‘내 나이를 세어 무엇 하리. 나는 오월 속에 있다. 연한 녹색은 나날이 번져가고 있다. 어느덧 짙어지고 말 것이다. 머문 듯 가는 것이 세월인 것을. 유월이 되면 ’원숙한 여인‘ 같이 녹음이 우거지리라. 그리고 태양은 정열을 퍼붓기 시작할 것이다. 밝고 맑은 순결한 오월은 지금 가고 있다.’
오늘이 마침 ‘오월’, 오늘이 지나면 내일은 마침 ‘유월’이다. 피천득 선생 말처럼 밝고 맑은 순결한 오월이 가고 원숙한 여인 같은 유월을 맞이하게 될 것을 굳이 내 나이를 생각할 이유가 무어란 말인가. 어쨌거나 지금은 오월, 내 푸른 청춘을 불태웠던 시절은 가고 태양빛에 곱게 익어 갈 6월이 앞에 있는데 무엇이 두려울까. 설령 낙엽이 지는 가을이 오고 겨울이 온다 해도 온 몸으로 기꺼이 받아 주면 그만인 것을 나이를 센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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