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도 고향을 그리워할까
식물도 고향을 그리워할까
  • 우래제 전 중등교사
  • 승인 2022.05.31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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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이야기
우래제 전 중등교사
우래제 전 중등교사

 

`흙이 풀리는 내음새/ 강바람은 / 산짐승의 우는 소릴 불러/ 다 녹지 않은 얼음장 울멍울멍 떠내려간다. // 진종일/ 나룻가에 서성거리다/ 행인의 손을 쥐면 따뜻하리라. //고향 가까운 주막에 들러/ 누구와 함께 지난날의 꿈을 이야기하랴./양귀비 끓여다 놓고/주인집 늙은이는 공연히 눈물 지운다.//간간이 잰나비(잔나비) 우는 산기슭에는/아직도 무덤 속에 조상이 잠자고/설레는 바람이 가랑잎을 휩쓸어 간다.//예제로 떠도는 장꾼들이여!/상고(商)하며 오가는 길에/혹여나 보셨나이까.//전나무 우거진 마을/집집마다 누룩을 듸듸는(디디는) 소리, 누룩이 뜨는 내음새….'

이 시는 내 고장 시인 오장환의`고향 앞에서'이다. 고향을 앞에 두고 가지 못하는 고향을 그리워하는데 식물도 고향을 그리워할까?

5~6년 전에 덕유산 꽃 여행을 다녀온 일이 있었다. 아주 큰 바위 덩어리 오목한 곳에 작은 진달래 한 포기가 있었다. 살짝 들어보니 통째로 쏙 올라온다. 다시 심어줄 흙도 없고 키워보고 싶은 욕심에 시골집에 가져다 심었다. 그 옆에 내 고향 뒷산에 울창한 숲에 가려 점점 쪼그라드는 진달래도 몇 그루 가져다 심었다.

몇 년 후 내 고향 진달래는 아주 세력이 좋게 자랐지만, 덕유산 것은 내 고향 진달래보다 키도 작고 꽃의 수도 적었다. 그러다 급기야 올해는 몇 송이 피우지 못하고 잔가지 반 이상이 말라 죽었다. 왜 그럴까?

25년 전쯤, 내 고향은 둥시 감의 고향이지만 아직 단감나무를 심는 사람들은 없었다.

하지만 시험 삼아 단감나무 몇 그루를 심었다. 그 중에 두 그루가 잘 살아서 이제는 한 그루에 단감 두 접 정도 딸 정도가 되었다. 그런데 작년에는 작은 가지가 몽땅 말라 죽고 달랑 2개의 단감만 달았다.

왜 하루아침에 잔가지가 모두 말라 죽었을까?

진달래와 단감의 가지가 말라죽은 것은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이 식물들은 자신들이 살던 곳의 기후와 다른 새로운 기후변화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했던 탓인 듯하다.

단감의 경우 작년 이른 봄 유난히 따뜻했던 것이 문제였던 것이다. 기온이 오르니 이들은 자신들의 고향에서처럼 이른 시기에 봄맞이를 하여 줄기에 물을 보내고 있었는데 갑자기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니 얼어 죽을 수 밖에.

그러나 내 고향에서 자라던 둥시 감은 아직 봄맞이 준비가 안 된 상태라 일시적으로 기온이 올라도 물을 흡수하지 못했던 탓에 가지가 얼어 죽는 피해를 당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덕유산 진달래의 경우 많은 가지가 말라죽은 원인은 도저히 헤아릴 수 없지만 그들의 고향과 다른 환경 탓인 것은 분명한 것 같다.

생물학적으로 덕유산 진달래와 회인의 진달래가 다른 종은 아니다. 같은 종이다. 그러나 어려서든 그 조상이든 조금이라도 다른 환경 조건에서 자라서인지 분명히 서로 다른 특성을 보인다. 이러한 차이가 점점 커서 분명히 생태적으로 다른 형태를 나타내는 것을 생태형(ecotype)이라고 한다.

진달래와 단감을 보면서 두 가지 생각이 머리에 맴돈다. 첫째 작은 기후변화에도 식물들에게 이렇게 심각한 피해를 주는데 앞으로 지금 재배하는 농작물들을 계속 재배할 수 있을까?

두 번째 식물도 제 고향을 그리워하고 있구나.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오늘 만난 꽃지기 후배가 식물들도 어려서 추위를 경험하면 커서도 추위를 더 잘 견딘다고 한다는 글을 읽었단다. 그렇구나. 나랑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었구나. 식물도 고향을 그리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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