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절 노래와 음반산업.
광복절 노래와 음반산업.
  • 충청타임즈
  • 승인 2007.08.17 2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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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규 호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

"흙 다시 만져보자. 바닷물도 춤을 춘다. 기어이 보시려던 어른님 벗님 어찌하리. 이 날이 사십년 뜨거운 피 엉킨 자취니 길이길이 지키세. 길이길이 지키세." 정인보가 작사하고 윤용하가 작곡한 '광복절 노래'의 1절에는 기쁨과 염원, 그리고 조국 번영의 영원함에 대한 의지가 절절히 배어 있다.

엊그제 광복 62주년을 맞은 기념식장에서 울려 퍼지던 이 노래는 그러나 요즘 아이들의 노랫소리로는 좀처럼 들을 수 없다.

어릴 적 우리는 광복절 노래는 물론 3·1절과 제헌절, 개천절, 6·25 노래까지 줄줄이 외며 학교에 가지 않고 쉬는 국경일의 즐거움을 노래로 시작했던 기억이 있다.

지금도 대부분의 가사가 생생하게 떠올려지는 필자와는 달리 이런 노래가 있다는 사실조차 잘 모르고 있는 요즘 어린이들의 모습이 안타깝다는 생각에 미치면서 이미 나도 보수주의로의 순치가 진행되고 있음에 소스라친다.

노래가 잘 불려지지 않는다. 아니 좀처럼 노랫소리를 들을 수가 없다. 장맛비가 양철지붕을 두드리는 유쾌한 선율을 들으며 누나, 동생과 함께 툇마루에 걸터앉아 부르던 '과꽃'이니 '동무생각'은 간 곳이 없고 학원으로 컴퓨터 모니터 앞으로 시선과 생각이 집중되고 있다.

물론 정권 미화의 방법으로 혹은 성장일변도의 개발독재의 선전수단으로 민족과 조국을 미화시키는 혹세무민의 도구로 각종 기념일에 대한 노래를 강요해 왔다는 측면도 있다.

모든 것이 일방통행이었던 그 때의 순종과는 달리 지금은 민족이라는 개념이 상상의 공동체라는 시각도 제기되고 있고, 또 그러한 국수적인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글로벌 시대를 지향해야 한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그러나 이 같은 거창한 패러다임 외에도 자기중심적인 사고방식과 매스미디어에 의한 대중문화의 무차별적인 공습이 노래를 하지 못하게 하는 아이러니를 낳고 있음을 주지해야 한다.

문화관광부의 2006년 문화산업백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음반 판매량은 100만장 이상의 판매실적을 올린 소위 밀리언셀러는 2001년 3건 이후 현재까지 전혀 기록되지 않고 있다.

심지어 50만장 이상 판매된 음반도 2004년 이후로는 전혀 나타나지 않은 것으로 집계되는 심각한 수준을 보이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은 음원의 디지털화와 이에 따른 무단 복제가 직접적인 원인이 되고 있는 것으로 진단된다.

그러나 노래방에 가서야 비로소 노래를 할 수 있고, 또 자막이 없이는 가사를 외워 부를 수 있는 노래가 사라지는 기계에로의 길들여지기가 가장 큰 근본요인이 아닐 수 없다.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는 우리를 노래와 춤을 즐기는 민족으로 적고 있다. 지금 무서운 성장세를 기록하며 한류라는 새로운 문화적 트렌드를 만들어 내고 있는 저력이 일찌감치 자리잡고 있었음을 증명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62번째를 맞는 광복절에 나란히 신문에 실린 한·일 양국의 사진 두 장이 흥미롭다. 한 쪽은 태극문양의 옷을 한국의 젊은이들이 꼭짓점 댄스를 추고 있고, 반면에 일본은 군국주의 시대 군복을 입고 행군하는 모습이다. 군사문화도 문화이고 흥겨운 춤도 문화일진대 상대를 폄하할 필요는 없다.

다만 노래와 춤을 즐기면서 그야말로 '빛을 다시 본' 날을 기념하는 역동성과 즐거움이 문화적 상상력을 훨씬 키울 수 있음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기념일을 기리는 노래가 됐든, 희로애락을 표현하는 노래가 됐든 간에 이 땅에 더 많은 노래가 불려지고, 더 많은 양심이 살아남아 음반 산업의 풍성함이 이뤄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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