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이고 싶습니다
친구이고 싶습니다
  • 김기원 시인·편집위원
  • 승인 2022.05.25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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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원의 목요편지
김기원 시인·편집위원
김기원 시인·편집위원

 

건강 외에는 아쉬울 게 없다는 허풍쟁이입니다.

그런 저에게도 부러운 게 하나 있으니 아니 한없이 왜소하게 만드는 그 무엇이 있으니 그건 다름 아닌 친구입니다.

지인도 많고 호형호제하며 지내는 절친들이 지천인데도 그런 생각이 드는 건 고희가 되도록 관포지교(管鮑之交)나 간담상조(肝膽相照)라 할 만한 우정을 쌓지 못했다는 회한 때문입니다.

어찌 전들 불알친구 소꿉친구 학교친구 같은 죽마지우가 없었겠어요.

분명 있었지만 이곳저곳으로 전학하고 객지를 떠돌다보니 관계가 단절되어 우정이 떡잎상태에서 시든 겁니다.

그래서 죽마고우들과 이놈저놈하며 막역하게 지내는 동료들을 보면 몹시 부러웠습니다.

대학원에 이르기까지 학교 동창들도 수두룩하고, 직장 친구 술친구도 많고, 문우(文友)들도 적잖이 있고, 탁구와 골프를 즐긴 탁친 골친도 많은데 내세울만한 친구가 없으니 그야말로 속빈강정이고 외화내빈입니다.

미련이 남아서 핸드폰에 저장된 전화번호와 카톡을 일삼아 검색해 보았습니다.

아무리 둘러봐도 `친구야 나야'하고 덥석 전화 걸만한 친구가 없는 겁니다.

순간 헛살았다는 자괴감이 밀려와 자책하고 탄식했습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모두 제 탓이었고 제 부덕의 소치였습니다.

에머슨이 `친구를 얻는 유일한 방법은 스스로 완전한 친구가 되는 것이다'라 했고, 법정 스님이 `친구란 내 부름에 대한 메아리이니 좋은 친구를 만나고 싶거든 내가 먼저 좋은 친구가 되어야 한다'고 했는데 그리 못한 자업자득이었습니다.

자존심과 이기심을 내려놓지 않고 좋은 친구가 되기를 바랐고, 내 것은 소중히 여기면서 남 것은 허투루 여긴 후과입니다.

그렇습니다. 영혼의 진동이 없는 만남은 한 때의 마주침에 지나지 않습니다.

자주 만났다고, 술잔을 기울인 횟수가 많다고, 취미 동호활동 단짝이라고 친구가 되는 게 아니었습니다.

필요에 의해 만난 만남은 필요가 없어지거나 옅어지면 멀어지는 게 인지상정이었고 세상사였습니다.

그라시안이 `우정을 지키는 일은 새로운 친구를 사귀는 것보다 소중하다'고 했듯이, 사무엘 존슨이 `인간은 꾸준히 우정을 수선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고 했듯이 친구도 꽃처럼 물주고 거름 줘야 결실을 맺는 거였습니다.

우리 민족예술사에 길이 남을 걸작인 `세한도'는 추사가 제주도 유배시절 이상적의 우정에 보은한 작품입니다.

`날씨가 차가워지고 난 후에야 소나무의 푸르름을 안다(歲寒然後知松栢之後彫也)'라는 논어의 구절에서 따온 `세한도'란 제명이 고상하고 시사하는 바가 커서 볼 때마다 마음이 숙연해집니다.

어려울 때 함께하는 친구가 참 친구인데 너는 누구에게 그런 친구였는가를 묻고 있는 것 같아서 입니다.

`혹시 이런 경험은 없는 가/ 텃밭에서 이슬이 내려앉은 애 호박을 보았을 때/ 친구한테 따서 보내주고 싶은 그런 생각 말이다/ 혹은 들길이나 산길을 거닐다가 청초하게 피어있는 들꽃과 마주쳤을 때/ 그 아름다움의 설레임을 친구에게 전해 주고 싶은/ 그런 경험은 없는 가'라고 이정하 시인이 노래했듯이 늦었지만 이제부터라도 누군가의 그런 친구이고 싶습니다.

또래여도 좋고 아니어도 좋습니다. 먼 길 떠날 때 처자식을 맡길 만한 친구를 바라는 게 아닙니다.

늘그막에 말동무 길동무가 되고 마음에 위안이 되는 신실한 친구이고 싶습니다.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시인·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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