얀테라겐
얀테라겐
  • 최지연 한국교원대 초등교육과 교수
  • 승인 2022.05.25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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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현장
최지연 한국교원대 초등교육과 교수
최지연 한국교원대 초등교육과 교수

 

`돈과 투자, 그리고 부자 되기'의 주제로 독자가 직접 저자를 만나는 프로그램을 진행한다는 플래카드가 캠퍼스에 게시되었다. 세상 속에 살면서 돈은 꼭 필요하며 또 부자가 된다는 것 역시 대다수 사람이 바라는 바이니 이상할 일도 아닌데 꼭 감추고 싶은 부분이 드러난 것처럼 어쩐지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스칸디나비아 반도에 사는 사람도 아닌데 말이다.

스칸디나비아 반도, 노르딕이라 불리는 북유럽에서는 돈을 몹시 불편한 주제로 여긴다. 물론 최근에는 그것을 비판하는 움직임도 있지만 대다수가 여전히 그렇다. 부를 자랑하는 것뿐 아니라, 심지어 낯선 사람에게 자신이 얼마를 버는지 어떻게 부를 쌓았는지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금기시된다. 이와 같은 금기는 얀테라겐(Jantelagen)이라는 뿌리 깊은 북유럽 규범으로 설명할 수 있다.

얀테라겐, 얀테의 법칙은 덴마크계 노르웨이인 작가인 악셀 산데모세(Aksel Sandemose) 풍자소설`도망자 그의 지난 발자취를 따라서 건너다'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이 소설은 허구의 작은 덴마크 마을 얀테(Jante)를 배경으로 하는데 이 마을은 대단히 규칙을 잘 지키는 마을이다. 이 얀테에서는 `잘난 사람'이 대우받지 못한다. 보통 사람들보다 똑똑하거나 잘생기면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는다. 또 얀테에서는 개인주의 또는 사적인 성공에 몰두하는 것보다는 집단과 공동체의 이익을 중시한다. 이 불문율을 깨려하면 즉 개인적인 성공에만 몰두하면 마을 공동체의 조화를 깨는 적으로 간주된다. 얀테의 법칙은 모든 영역에 적용될 수 있었고 마을의 주민이라면 누구나 그 법의 적용 대상이 되었다.

이 얀테의 법칙은 이렇다. 첫째, 당신이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마라. 둘째, 당신이 남들만큼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마라. 셋째, 당신이 남들보다 똑똑하다고 생각하지 마라. 넷째, 당신이 남들보다 낫다고 생각하지 말라. 다섯째, 당신이 남들보다 많이 안다고 생각하지 마라. 여섯째, 당신이 남들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마라. 일곱째, 당신이 모든 일을 잘한다고 생각하지 말라. 여덟째, 남들을 비웃지 마라. 아홉째, 누군가 당신을 걱정하리라 생각하지 마라. 열째, 남들에게 무엇이든 가르칠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 마라. 얀테의 법칙은 열 가지지만, 모두 한 가지 생각 즉 `스스로 특별하다고 생각하거나 더 낫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의 다른 표현들이다.

이 얀테의 법칙을 소설 속, 허구의 마을에서만 통용되는 이상한 방식으로 소설가가 지어낸 법칙이 아닌가 생각한다면 그건 오해다. 사실 이 원칙들은 배경이 된 노르딕 국가들에서는 이미 사회적 룰로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지던 것이며, 그 룰을 소설 속에 구체화하여 옮겼다는 것이 더 적합하다. 이 불문율은 그동안 노르딕 국가의 혁신이나 창업 영역에서 발목을 잡는 원인으로 지목되었었다. 즉 성공해도 부를 과시하면 안 되고, 자신의 성공은 자기가 잘해서 된 것이 아니라는 엄격한 가르침이 청년들의 창업 의지를 꺾고 있다는 분석이 많았다. 그러나 최근 다른 평가도 있다. 얀테라겐 덕분에 오히려 실패해도 실패자라는 낙인을 찍지 않는다는 것에서 청년들에게 동기부여가 되고 있으며 부를 자랑하는 문화에서 나타나는 여러 부작용을 거르는 필터 역할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얀테라겐이 그렇듯 사회 문화와 관습에는 좋은 효과와 부작용이 동시에 나타난다. 그럼에도 얀테라겐이 부러운 이유는 우월해야 한다는 의식, 권력과 돈을 향한 무모한 경쟁, 그로 인한 불평등으로부터 조금은 자유로워지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다.

최소한 대학에서만큼은 돈, 권력 등 유한한 자원이 아니라 지혜 탐구라는 무한한 자원이 추구되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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