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도(常道)
상도(常道)
  • 강석범 충북예술고 교감
  • 승인 2022.05.25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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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산책
강석범 충북예술고 교감
강석범 충북예술고 교감

 

아주 가끔 교사이기 이전에 미술인으로서 `작가'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본다.

내가 만든 미술품을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까? 문득 생각해보다 쓴웃음을 짓는다. `작품은 무슨~ 내가 뭔 놈의 작가라고~' 그러면서 개인전도 하고 단체전도 꾸준히 참여한다.

예술적 가치 또는 예술가로서의 뚜렷한 목표나 지향점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하루 세끼 밥 먹는 것처럼, 삶의 일과쯤으로 생각한다.

여기서 재밌는 건, 나는 정작 배가 고플 때만 밥을 먹는다. 대개는 하루 한 끼 정도 먹는다. 무언가 먹고 싶어 먹기보다는 배가 고파야 먹는다.

하지만 미술작업은, 하고 싶을 때만 하는 게 아니라 그냥 습관처럼 늘 하고 있다. 아름답거나 어떤 생각이 떠오르면 바로 스케치로 옮기고 관련 책들도 찾아본다.

때론 전시장들을 돌아보며 내가 구상한 작품과 어울리는 맞춤형 전시장을 찾아 헤매기도 한다. 오히려 밥보다 미술 행위가 당연히 내겐 일상이다.

나는 내 미술작품을 타인에게 곧잘 주는 편이다. 개인에게도 주고, 기관이나 단체에 아무 조건 없이 기증하기도 한다. 볼품없는 작품이지만, 작업실이나 창고에 박혀 수북이 먼지 쌓이기 전에 여기저기 분양한다.

이런 내 모습이 누군가는 마땅치 않은가보다. “힘들게 만든 작품을 죄다 쉽게 줘 버리면, 작품 판매로 작업을 이어 갈 수밖에 없는 전업작가 분들에게 상도(常道)가 아니지 않느냐?”라고 비판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말 그대로 상도는 `장사꾼으로 지켜야 할 도리'이니 작품 제작과 판매를 일종의 상업행위로 정의한다면, 나는 정말 상도를 해치는 사람임이 틀림없다.

내게는 이에 관한 기준이 하나 있다.

개인에게 작품을 드릴 때는 절실한 눈빛을 본다. 예를 들어 전시장에서 내 작품을 너무 갖고 싶어 하거나, 또는 작품과 크게 공감하는 눈빛을 보이면 나는 다가가 이렇게 말한다. “작품 괜찮아요? 보기 좋은가요?” 만약 감상자가 “네~ 너무 좋은데요?” 하시면 기분 좋게 드린다. 가끔 작품 옆에 가격이 붙어 있어도 개의치 않고 예쁘게 포장해서 기쁘게 드린다. `시답지 않은 내 작품을 저리 애절한 눈빛으로 봐주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올여름 뜨거운 더위가 한창일 7월 중순쯤 12번째 개인전을 연다. 날짜도 나왔고, 지금부터는 더 구체적으로 부지런히 움직여야 한다. 약 200~300여 개 조각 파편들로 커다란 덩어리를 만들어 갈 예정이다. 아마도 조각 파편들을 떠내는 내 손은, 그 수고로움으로 인해, 밤마다 퉁퉁 부어 손가락이 잘 굽혀지지도 않을 것이다.

얼마 전 우연히 내 작품 제작과 작업 철학에 대해 자연스레 이야기할 모임이 있었다. PPT 작품 사진을 넘기는 중, 작품이 마음에 들었는지 모임의 한 분이 “와~~”하며 살짝 감탄하신다. 화면을 바라보는 눈빛이 깊다. 이건 내 기준으로 볼 때 작품을 드려야 하는 눈빛이다. 하하하.

장사꾼 처지에서 `상도'는 서로에게 분명 지켜야 할 도리다. 나도 그걸 안다. 다만, 나는 미술 제작을 그 처지에서만 하지는 않는다. 대신 내 기준의 상도 또한 분명하다. 그건 내 작품을 바라보는 애정 어린 눈빛이다. 주변 임들이 갑자기 내게 애잔한 눈빛을 쏘기 시작한다. 어? 저 눈빛은 내게 보낼 게 아니라 내 작품에 보내야 하는 눈빛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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