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림지뜰 모심기
의림지뜰 모심기
  • 김순남 수필가
  • 승인 2022.05.24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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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김순남 수필가
김순남 수필가

 

길놀이 행렬이 논길로 접어든다. 꽹과리, 징, 북 등 농악소리가 들판에 신명나게 울려 퍼지자 길을 걷던 사람들과 행사 참여자들이 모여든다. 의림지뜰 손모심기 체험행사가 삼한의 초록길 솔방죽 옆에서 이뤄지고 있다.

우리지역은 도시와 농촌이 복합된 소도시이다. 시내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논밭을 볼 수 있고 드넓은 의림지뜰 한가운데 삼한의초록길이 조성되어 많은 사람들이 이 길을 걷는다. 이맘때쯤이면 길을 걸으며 논에 이앙기로 모내기 하는 장면을 볼 수 있다. 의림지 뜰은 삼한시대에 축조하였다는 의림지가 있어 관개농업을 지금껏 이어왔으니 농경문화의 발상지라고도 불린다.

모심기 본 행사가 막을 올렸다. 돼지머리를 상위에 올리고 풍년을 기원하며 예를 올리자 예술단원들의 풍년가, 방아타령 등 소리꾼들의 구성진 소리들이 들판에 퍼진다. 실제 체험에 참가한 학생들은 선뜻 논에 들어서지 못한다. 요즘 학생들이 언제 맨발로 흙탕물이 가득한 논에 들어가 보았겠는가. 어른들과 학생들이 짝을 이뤄 논으로 들어가 손모를 심는다. 구경꾼들 중에 연세가 지긋하고 농사를 지어본 경험이 있는 이들은 세월을 되짚어 추억을 더듬으리라.

내가 살던 고향들판도 시공을 초월하여 의림지뜰로 옮겨온다. 봄이면 농부들은 날마다 쟁기를 지고 소를 앞세워 논으로가 종일 쟁기질을 해야 했다. 모심기 철에 맞춰 논을 갈고 써레질로 흙덩이를 부수고 논바닥을 고르느라 소와 씨름하시던 아버지 모습이 눈에 선하다.

모내기가 시작되면 아버지와 어머니는 이른 아침 집을 나서 큰들로 가신다. 동네사람들이 모여서 돌아가며 품앗이로 모를 심기 때문이다. 모심기가 시작되면 보름에서 스무날정도 하루하루 심어야할 집 날짜를 짜놓고 큰들에 빈 논이 없어질 때까지 마을모심기는 이어진다. 허리를 구부리고 하는 일이라 힘이 많이 들고 한 두 명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여럿이 어울려 힘겨운 일을 해낸다. 모심기는 일렬로 쭉 서서 못줄을 띄우고 표시되어있는 간격에 맞춰 모를 심어야 한다. 양쪽 끝에 줄잡이가 한명씩 있어 한 줄 모심기가 끝나면 줄잡이는 서로 큰소리로 신호를 보내 못줄을 옮겨 꽂는다. 이때 모를 심는 사람들은 잠시 허리도 펴고 누군가 선소리로 노래를 부르면 여러 사람이 선소리 내용에 맞게 뒷소리로 화답을 한다. 노동요나 음담패설을 하며 흥을 돋우는데 힘겨운 노동을 이겨내기 위함도 있지만 농작물도 이런 소리들을 듣고 열매를 많이 맺는다는 속설이 있다.

힘든 일에 먹거리가 빠질 수 없다. 어머니는 다른 집 모심기를 하러 다니다 우리 집 모를 심는 날엔 논에 들어가시지 않는다. 어머니는 새참을 준비해 논으로 내가시고 점심에 먹을 찬을 준비하시느라 손이 바쁘시다. 가마솥엔 모처럼 흰쌀밥이 지어지고 보리 필 때쯤 나온다는 보리꽁치도 갖은양념에 조리고 두부도 굽고 전도 부치며 나물도 무쳐서 논으로 이고 가야한다. 이때는 동생을 보다가도 심부름은 물론, 동생들을 앞세우고 물주전자라도 들고 어머니 뒤를 따라 논으로 가야한다. 논두렁엔 막걸리 통이 먼저 자리를 잡고 길가에 풍성한 점심상이 차려진다. 이즈음엔 달라졌다. 논들도 경지정리가 되었고 농기계로 논을 갈며 논을 삼는 일, 모를 심는 일도 기계화되었다. 일손이 줄어든 만큼 서로 도우며 힘든 일을 해내던 마을사람들의 결속력이나 따뜻한 정은 잃어가고 있다. 저마다의 그리운 마음을 의림지 뜰에 소리꾼들의 노랫가락처럼 풀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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