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흥민과 국뽕
손흥민과 국뽕
  •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 승인 2022.05.24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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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단상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손흥민이 세계적인 축구선수임은 이제 누구도 의심할 수 없는 확실한 사실이 됐다. 손흥민은 세계 여러 나라 최고의 선수들이 활약하는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EPL) 2021~2022 시즌에서 23골을 기록하며 득점왕에 올랐다. 손흥민의 EPL 득점왕 등극은 아시아 선수 중에는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어서 `기념비적 업적'이라는 수식어가 조금도 어색하지 않다. 게다가 올해가 월드컵 4강 신화의 빛나는 감동을 경험한 지 꼭 20년이 되는 해이어서 그의 금자탑은 한결 의미가 있다.

일찌감치 유럽 리그에 진출한 손흥민은 발군의 실력으로 한국 축구 역사에 새로운 이정표를 만들고 있다. 독일인들에게 `차붐'이라는 전설적 기억을 남기고 있는 한국 축구선수의 유럽 정규리그 최다골 기록(17골)을 넘어섰으며, 히딩크 신화의 주역 박지성을 능가하는 활약은 충분히 현재 진행형이다.

나 또한 축구를 가장 좋아하는 스포츠로 손꼽는 데 조금도 망설임이 없다. 청소년기에는 동네에서 축구 꽤나 한다는 동무들과 팀을 만들어 원정 내기 축구에 열을 올린 적도 있고, 대학생 시절에는 그 대학 역사상 처음으로 축구동아리를 만들어 공차는 데 열을 올리기도 했다. 기자 때는 한국기자협회 축구대회에서 내 소속 회사가 준우승을 차지하는 쾌거에 주전선수로 활약하면서 `하는' 축구의 절정을 맛보기도 했다.

이제 축구를 `보는' 것에 만족해야 하지만 밤을 새워 EPL 중계를 시청해야 하는 `골수'의 신분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다.

그러므로 손흥민의 놀라운 기량은 A매치라고 부르는 국가대표 간 경기에 한정해 볼 수밖에 없는 아쉬움이 있다.

그런데 국가대표 축구 경기에서 손흥민의 활약상은 늘 안타까웠고 속상했으며, 어떨 땐 치밀어 오르는 화를 참아내기 어려울 때가 있다. 전술적으로 손흥민 같은 불세출의 선수가 팀에 존재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상대 팀에겐 큰 위협이다. 거기에다 국가대표팀 선수들을 EPL 선수들과 단순 비교하기에는 기량 차이가 있다는 자조적인 평가도 있다.

그러나 나는 그런 외형적 요인보다는 손흥민을 비롯한 국가대표 선수들에게 나타나는 힘 조절 실패의 내재적 부담이 더 큰 탓이라는 진단에 주저하지 않는다.

국가와 민족의 부름을 받아 국민을 실망시켜서는 절대로 안 되는 사명감은 온몸에 긴장으로 꽉 찬 힘이 들어갈 수밖에 없고, 그런 경직은 부자연스러운 직진과 무리한 강슛이 남발하는 소위 `뻥축구'의 병폐를 극복할 수 없다.

모든 스포츠가 그렇듯이 축구 역시 지나친 `힘'보다는 부드러움이 선수 스스로를 통제하면서 상대팀에게 더 큰 부담을 준다. 그리고 그런 유연함이 경기장을 지배하게 되고 결국 승리를 만드는 슬기로움이 된다. 아시아인 최초로 EPL 득점왕에 오른 손흥민의 업적 뒤에는 항상 `아버지 손웅정씨의 엄격한 지도'라는 `덕분'이 이어진다. 그 `덕분'의 지도의 핵심은 기본기 훈련에 있다. 스스로가 원하는 대로 공을 다룰 수 있을 때까지 다른 기술로 전진하지 않는 기본의 충실함이 상대방을 압도하는 절정의 기술로 진보하는 득점왕 손흥민을 만든 것이다.

손흥민의 EPL을 비롯한 온갖 프로 스포츠는 자본주의의 총아에 해당하는 것쯤은 이제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축구의 역사는 노동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계급의 처절함 사이에서 귀족들이 즐기던 공놀이에서 시작되었다. 그후 산업 자본의 성장과 노동 복지의 향상에 따른 중산층으로의 확산을 통한 대중성의 확보의 발전 단계를 거쳐 지금처럼 거대한 시장으로 성장했다. 그러므로 거액의 연봉을 쫓아 EPL과 프레미라리가, 세리에A의 세계 3대 축구 리그와 분데스리가 등에서 활약하는 세계 정상급 선수들의 일상은 `직업'으로의 축구인데 그들과 우리는 그 `일'이 즐겁다. 조국을 위해 무조건 이겨야 하고,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어떻게든 승리해야 하는 `국뽕'의 부담스러운 `힘'을 초월하는 손흥민의 부드러움을 A매치에서도 보고 싶다.

우리가 먹고살기 위해 애쓰는 `직업으로의 노동`도 축구처럼 즐거운 세상. 손흥민의 아름다운 질주와 우아한 감아차기 같은 부드러운 곡선의 계절을 나는 기다린다. `기본'이 못내 아쉬운 요즘 선거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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