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소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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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재정 수필가
  • 승인 2022.05.24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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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이재정 수필가
이재정 수필가

 

책 한 권을 받는다. 제목과 책이 산뜻하고 예쁘다. 지인을 만난 듯 반갑다. 표지를 여니 작가의 프로필이 나온다. 화려하다. 학력, 경력, 수상 내역으로 줄이 길다. 내세울 것 없이 단출하니 초라한 나의 수필집이 슬그머니 부끄러워진다.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을 알리기 위한 자기소개서는 입시나 취업을 위하여 꼭 필요한 문서다. 인터넷에는 이를 잘 쓰는 법을 소개한 정보가 넘쳐난다. 하물며 수수료를 받고 대서해 주는 곳도 있다. 그만큼 경쟁이 치열하다는 증거다. 요즘 기업들의 취업경쟁률은 대부분 수십 대 일을 훌쩍 넘긴다. 누구나 들어가고 싶어 하는 곳의 공개채용은 수많은 지원자가 몰린다.

기업들이 신입사원 채용 시 자기소개서를 검토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평균 5분이라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사람의 시선을 확 붙잡을 수 있는 키워드를 살려야 한다. 이름이나 경력, 직업 등을 알려 짧은 시간 안에 자기를 소개하고 어필해야 하는 것이다. 본인의 장점을 최대한 살려서 상대방의 호감을 얻어내야 좋은 결과가 온다. 때로는 한 줄의 소개 문구에 끌려 수많은 책 중에 그 책을 고르는 이치와 같다.

자소서는 연애편지와 같다는 말을 인터넷에서 빌려온다. 지원동기를 쓸 때는 연애편지를 쓰듯이 써야 된다고 설명하고 있다. 구애를 하는 사람과 구직을 하는 지원자는 상대방의 마음을 사야 하는 입장이 같음을 뜻함이다. 자기를 세일즈한다는 생각으로 스펙보다는 내 이야기를 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프로필이 대단한 이들은 대부분 똑 부러지게 야무진 사람들이다. 무슨 일이든 당차게 잘 하는 사람으로 보인다. 아무것도 내밀게 없는 나는 설고 얼뜨다. 늘 하던 일이건만 능숙하지 못하다. 처음 하는 것처럼 낯설고 서툴러 잘 하고 싶은데 마음과는 딴판이 된다. 살아온 세월에 비하면 내 몸이 세상사에 익숙해 있지가 않다. 일도, 사람을 만날 때도 자연스럽게 흐르지 못하고 컴퓨터의 렉이 걸리듯 멈추어 서곤 한다.

이런 나를 원망하지 않는다. 바보라고 자책하지도 않는다. 고작 나의 호칭이 주부, 엄마, 직장인이지만 어떤 역할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잘 못해서이지 태만했던 건 아니다. 드라마를 보면서 거기에 몰입되어 눈물을 흘리는 어리숙한 내가, 특별히 잘 하는 건 없어도 그냥 열심히 사는 나를 힘껏 응원한다.

그래도 내 몸에 감사하며 산다. 주위에서 다들 다이어트하느라 애를 쓰는 모습이 안쓰럽기까지 하다. 갱년기가 왔어도 몸무게는 그대로다. 체중조절 하느라 먹고 싶은 음식을 힘들게 참아야 하는 고통을 준 적이 한 번도 없다. 지금껏 그런 처절한 씨름을 해본 적이 없으니 축복받은 일이다.

또 여름철에 반팔 소매 사이로 얼핏 드러나는 검은 정체는 여자로서 치욕적이다. 어쩌다 그 모습을 보게 되면 내가 다 부끄럽다. 무슨 일인지 한 번도 제모(除毛)를 해본 적이 없다. 신경 써서 자주 관리해주어야 하는 불편을 덜어 준 고마운 몸이다.

58년째 세상을 살고 있지만 하루하루가 서툴고 미숙해도 괜찮다. 나에게 오늘은 처음이기 때문이다. 30년째 한 직장을 다니고 있는 사람. 어디 그런 이가 나뿐이 아니라 해도 이 엄청난 세월을 한곳에서 겪어 낸 끈기는 대단한 일이라고 자화자찬하고 싶다.

지금, 나의 자소서는 부실한 몸으로 잘 견뎌 준 대견한 나에게 보내는 위로다. 젊을 때는 연애편지를 그럴싸하게 쓴다는 소리를 들었건만 이제 너무 먼 거리에 와 있다. 연애와는 외진, 감사장을 쓰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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