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울함을 향상(向上)의 기회로
억울함을 향상(向上)의 기회로
  • 심억수 시인
  • 승인 2022.05.22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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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억수 시인
심억수 시인

 

청암사 가는 길 산자락에 참나무와 소나무가 서로 뿌리를 잡고 있다. 서로 다른 뿌리를 부여잡고 자신의 삶을 가꾸는 연리근 나무를 본다. 엉겨 붙은 뿌리를 드러낸 나무는 저마다의 색깔로 우뚝하다. 종류가 다른 나무는 서로 인내하며 자연의 일원이 되었다. 나무는 자신의 처지를 원망하지 않는다. 국모에서 폐위된 처지를 원망하지 않고 질곡의 세월을 인고한 인현왕후의 마음을 헤아려 본다.

청암사는 폐위된 인현왕후가 3년간 머물렀던 곳이다. 일주문을 지나 사천왕문에 들어서니 속세에 치든 마음이 경건하다. 잘 다듬어진 길을 조금 걸으니 우비천의 맑은 샘물이 목마른 중생을 기다리고 있다. 물 한 모금을 마시고 암벽에 새겨진 중생들의 욕심을 본다. 협곡에 층층이 앉은 바위는 푸른 이끼를 덕지덕지 덮고 있다. 푸른 시간을 안은 바위 사이로 떨어지는 물소리는 자연이 들려주는 독경이다. 자연의 법문을 들으며 가만가만 극락교를 건너니​ 다층석탑이 중생을 맞는다. 대웅전 오른편에 진영각이 있다. 진영각은 조사들의 공덕을 기념하기 위한 건물이다. 왼편에는 육화료가 있다. 육화료는 비구 스님이 공부하는 건물이다.

경내에 들어서자 고요한 엄숙함에 불자가 아니어도 절로 숙연해진다. 대웅전에 들려 가족의 안녕을 빌었다. 폐위된 인현왕후가 은거했던 극락전을 향해갔다.

인현왕후는 폐위되어 갈 곳이 없었다. 누구라도 폐비를 거두어주면 극형의 화를 당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암사 스님은 폐비를 극진하게 예우하여 모셨다. 경내에 한옥을 건축하였다. 지금의 극락전이다. 극락전은 보통의 사찰 건물과 달리 단청 없는 여염집 형태의 건물이다. 극락전 왼편에 보광전이 있다. 보광전은 인현왕후의 복위를 빌던 곳이다. 극락전과 보광전이 위치한 경내는 묵언하며 걷고 명상하며 몸과 마음의 치유를 체험하는 인현왕후 명상길을 조성해 놓았다.

사찰을 감싸고 있는 불령산 하늘에 흰구름이 장관이다. 바람에 흩어지는 구름은 보광전에서 기도하던 인현왕후의 소복이 된다. 자연이 그리는 경이로운 풍광이 환상이다. 바람이 들려주는 환청은 인현왕후의 간절한 기도다. 자연의 풍광과 맑은 공기를 욕심껏 가슴에 담아본다. 수행자만이 누리는 특권을 흉내 내며 심호흡해본다. 바람은 인현왕후의 고귀한 마음을 닮으라며 타이르듯 중생의 얼굴을 어르고 있다.

인생의 길흉화복은 변화가 많아 예측하기 어렵다. 인간이기에 삶의 외로움을 다스리며 산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행복한 미소를 짓는다. 그렇지만 개인마다 생로병사의 고통과 원망하고 미워하는 사람과 만나는 고통을 안고 산다. 인현왕후도 폐위의 비애를 다스리며 인고의 세월을 보냈다. 억울함을 밝히면 원망의 마음만 생긴다 했다. 인현왕후는 폐비의 처연했던 삶을 원망하지도 않았다. 억울함을 당하는 것으로 수행의 문으로 삼으라 했다. 폐비는 국모의 기품을 잃지 않고 매일 불공을 드리며 마음 수행을 했다. 왕후로 복위된 후 청암사에 큰 호의를 베풀어 전답을 하사하고 수도산 일대를 보호림으로 지정했다고 한다.

청암사를 둘러보고 내려오는 길 올라갈 때 보았던 연리근 나무. 긴 세월 서로 원망하지 않고 조화를 이룬 참나무와 소나무의 슬기로움을 본다. 올곧은 소나무는 당파의 소용돌이에 아내를 폐위할 수밖에 없었던 숙종인가, 아름드리 참나무는 억울함을 향상(向上)의 기회로 만든 인현왕후의 환영일까. 상상도 잠시, 발길을 재촉하는 저녁 햇살의 등쌀이 야속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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