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는 누군가의 깜빡이
잠자는 누군가의 깜빡이
  • 반지아 수필가(괴산 청안초 행정실장)
  • 승인 2022.05.22 17: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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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가는대로 붓 가는대로
반지아 수필가(괴산 청안초 행정실장)
반지아 수필가(괴산 청안초 행정실장)

 

일터로 향하는 출근길이 마냥 설레고 기쁜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특히나 느긋한 주말을 보내고 맞이하는 출근길은 생각만으로도 이미 지친 기분이다.

한 주가 시작되는 월요일 아침, 어렴풋이 깨어난 정신과는 달리 이불 밖으로 움직일 생각이 전혀 없는 몸을 겨우 일으켜 씻고 나오면 상쾌한 기분도 잠시 아침 전쟁이 시작된다.

매일 반복되는 루틴이니 가족 구성원 모두가 알아서 잘 해주면 좋으련만 1분 1초가 아쉬운 부모의 마음과는 달리 아이들은 세월아, 네월아 하며 나무늘보 코스프레를 하기 바쁘고, 그런 아이들을 채근해 간신히 준비를 다 마쳐놓으면 정작 나 자신은 아직 파자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현실을 직시하게 된다. 요즘 말로 현타가 오는 것이다.

그래도 스릴 있게 아이들을 시간 맞춰 등원시키고 서둘러 차에 올라타 시간을 확인하니, 지금 출발하면 늦지는 않겠다는 생각에 안도의 한숨을 돌린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어마어마한 교통체증에 또다시 눈앞이 캄캄해진다. 조금이라도 더 서둘러야 하는 그 순간에, 의식적으로 주변을 돌아본 적이 있다.

너 나 할 것 없이 목적지에 늦지 않기 위해 기를 쓰고 앞서려는 모습에 아침부터 이렇게 달려야만 하는 우리네 삶이 너무 치열해 애잔하게 느껴졌다. 더 씁쓸했던 건 기본 예의조차 지켜지지 않는 도로의 모습이었다.

한참을 달리다 마주한 도로와 도로가 합류하는 지점, 옆 도로를 통해 큰 도로로 들어오려는 차들은 양보를 바라며 회전 깜빡이를 켜고 기다렸지만 큰 도로를 달리는 차들은 그럴 생각이 전혀 없다는 듯 꼬리에 꼬리를 물고 지나가기 바빴다.

결국 마음이 급해진 옆 도로의 차 한 대가 잠시 생겨난 틈을 향해 잽싸게 끼어들었다.

모두가 거북이처럼 기어가고 있는 시간에 불쑥 앞으로 튀어나왔으면 당연히 미안하다는 의미로 양쪽 깜빡이를 켰어야 했지만, 그 운전자는 그대로 다시 다른 차선으로 넘어갔다. 결국 들려오는 아주 성이 많이 난 듯한 뒤차의 크랙션 소리. 소리 없는 전쟁터였던 도로를 끝내 시끄럽게 만들고 그 차는 멀어져갔다.

누군가 그랬다. 운전이라는 것이 사회생활과 비슷하다고. 길도 잘 찾아야 하고, 끼어들 때와 안 끼어들 때를 잘 구분해야 하며, 무엇보다도 고마우면 고맙다고 미안하다면 미안하다고 표현할 줄 알아야 한다고. 그런데 이 사회가 점점 고맙다는 말, 미안하다는 말, 사랑한다는 말을 낯설어하기 시작하면서 같은 생리로 돌아가는 듯한 도로도 언젠가부터 미안하다는, 고맙다는 돌발 깜박이는 찾아보기가 힘들다.

감정을 표현하는 말들이 아무렇지 않게 하기에는 너무 어려운 말이라는 것을 잘 안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굳이 표현하는 게 더 민망한 것 같고, 눈빛만 주고받아도 서로가 통할 것 같기 때문이다.

하지만 도로 위의 사정은 다르다. 정체로 인해 같은 도로에 몇 시간을 같이해도 길이 뚫리는 순간 우리는 그저 스쳐 지나가는 사이일 뿐이다.

그럼에도 “양보해 줘서 고마워요.” “다 같이 힘들지만 내가 좀 먼저 갈게요. 미안해요”라고 깜빡이를 켠다면 그 사소한 행동이 큰 싸움을 막을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뜻하지 않은 큰 따뜻함을 전해줄 수도 있음을 기억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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