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쿼터를 마치며
1쿼터를 마치며
  • 전영순 문학평론가
  • 승인 2022.05.18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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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전영순 문학평론가
전영순 문학평론가

 

허기진 밥그릇에 영혼을 팔고 사는 시대, 밥그릇 싸움이 치열하다. 빈곤 국가도 아닌데 웬 밥그릇 타령, 밥그릇 싸움에 양심(良心)이 달아났다. ‘사물의 가치를 변별하고 자기의 행위에 대하여 옳고 그름과 선과 악의 판단을 내리는 도덕적 의식’이라는 사전적 의미에 균형을 잘 잡으라고 달아준 양심(兩心)은 어디로 갔을까? “최소한 양심은 가지고 살아라”라는 말을 듣고 자랐는데, 성인이 되고 보니 온전한 양심을 가진 사람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 지역과 나라를 위해 일해보겠다고 앞장섰던 정치가들의 병든 양심이 소시민에게까지 미쳤는지 편향된 양심을 가진 사람들이 다반사다.


 양심껏 살면 법도 필요 없다. 인정으로 따듯해야 할 사회가 오싹할 정도로 냉정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지나친 법과 규칙을 앞장세워 이 사회에 살얼음판을 깔아놓은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법을 잘 피해 가는 법치자들 앞에 선량한 시민들이 희생양이 되는 경우를 가끔 본다. 법 없이도 잘 살던 사람들이 어느 때부터 본인에게 손해가 된다 싶으면 괴변 같은 원칙을 내세우며 따지러 든다. 쉽게 넘어갈 수 있는 소소한 일에 과잉 반응을 보이는 사람을 만나면 할 말이 없다. 


한국어 강사로 일하는 내게 통통하게 살찐 젊은 선생님이 던진 말이 신경 쓰인다. “선생님,  처음이라 잘 모르시는 것 같아 하는 말씀인데요. 치킨 파티라니요? 저는 괜찮은데 우리 반 학생들이 저한테 선생님은 뭐 해 줄 거냐고 해서 치킨 먹고 싶으면, 너희들이 돈 내 그러면 사 줄게.”라고 했다는 것이다. 덧붙여 자기가 다른 대학에서 수업할 때 비스킷 하나 주고 당했던 수몰과 자랑을 장황하게 늘어놓으며 선생님 강의 평가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 아시죠? 강의 평가는 어제로 이미 끝났다. 석사·전문 교원 2급 이상, 대학에서 유경험자들이 3만 원에서 3만 5천 원 시급 받으며 수업하는데 밥그릇 싸움하고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1쿼터 마지막 재량수업, 다음 학기부터 다른 선생님과 공부할 학생들에게 어떻게 하면 추억만들기를 해 줄까 고민하다가 다른 반 선생님과 협업해서 야외수업 하기로 했다. 단체전과 개인전 게임 후 학교식당에서 하는 식사보다는 학생들이 좋아하는 치킨으로 하기로 했다. 이 이야기를 우리 반 학생이 다른 반 룸메이트에게 한 모양이다. 어제 단체 톡 정황을 볼 때 어떤 선생님이 이 문제로 학교 측에 항의까지 한 것으로 짐작된다. 이런 것에 두려워할 내가 아니지만, 함께 수업할 선생님과 상의한 끝에 준비된 선물은 주되, 치킨 파티는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다문화 시대를 맞아 한국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한국어를 배우러는 외국인이 늘어났다.  대학마다 다양한 교과과정과 프로그램으로 유학생들을 유치하고 있다. 나 또한 이 과정에 편승했다. 십여 년 외국 생활과 이들과 같은 경험을 토대로 나름 자부심을 가지고 몇 년째 한국어를 가르친다. 가능한 한국 문화와 정서를 전달하려고 노력한다.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은 학문적인 것보다는 그들과 함께했던 추억이다. 지나친 원리 원칙을 따지는 것보다는 학생들이 일탈하지 않고 한국 생활에 잘 적응하며 출석하는 것이 우선이고, 다음으로 학생들이 희망하는 목표에 달할 수 도와 주는 것이며, 한국에 대해 좋은 이미지를 가질 수 있도록 지도하는 것이 선생님의 역할이 아닐까 생각한다. 학생들이 행복해 하는 모습을 보면서 어떤 실내교육도 저 학생들을 저렇게 행복하게 만들 수 없다고 생각한다. 게임에 몰두했던 학생들이 목마르다고 아우성이다. 몇 학생이 다가와 선생님 치킨 언제 먹느냐고 묻는다. 얘들아 치킨 날아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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