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이 안기는 또 다른 삶
퇴직이 안기는 또 다른 삶
  • 충청타임즈
  • 승인 2007.08.16 23:5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 중 겸 <건양대학교 석좌교수>

얼마전 옛 일터에서 근무하던 몇 분과 점심을 했다. 모처럼 아무 부담 없이 옛날 얘기를 했다. 그때 같이 일하던 사람들은 무얼 하고 있나로 화제가 이어졌다.

아는 분한테 또 이메일이 왔다. 그간 한 번 모시지도 못 했다며 미안해 했다. 평소보다 좀 과하게 진지했지만, 순수한 진심을 읽을 수 있었다. 촌티 날 정도의….

언제 식사 한 번 하자는 말은 거짓말이다. 우선 내가 그렇다. 그런 식으로 응대할 경우에는 그럴 의사가 별로 없다. 정 궁금한 사람이라면 그렇지 않다. 바로 일정표 꺼내서 날짜를 정한다. 첫 직장 냄새는 여전히 지워지지 않고 있다. 애써 그렇게 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강산이 몇 번 변했지만 내 이미지는 아직도 거기에 머물러 있다. 몇 년의 시간으로는 지워질리도 없다. 오늘에 이어진 개인역사의 나를 그대로 지니고 산다. 다만, 이게 내 인생은 아닌데 하는 생각은 아직 떨쳐 버리지 못 한 상태다. 지금 나는 회사와 학교에 몸을 두고 있다. 나쁘다는 게 아니다. 일하니 좋기만 하다. 공직자가 자리를 물러났을 때 낙향이 이상이라는 통념은 책무로부터의 해방과 여유를 바라기 때문이다.

낙향한다는 건 두 가지 의미가 있다고 본다. 하나는 후진 양성이다. 하나는 온전한 사적 삶이다. 책 보고 글 쓰며 낮잠 자고 마나님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걷기하는 유유자적. 그 느긋함 속에서 생활하는 것이 꿈이다. 21세기에도 사고와 의식은 19세기에 머물러 있다.

퇴직자는 예전에 했던 직무와 연계된 일을 한다. 불가피하다. 그게 쓸모다. 처신이 어렵다. 그간 지녀 온 원칙을 잠깐 잠깐 접어야 할 때도 있다. 해서는 안 될 무리수를 둘 일도 있으리라. 부작용의 회오리에 휘말려 몇 십년 가꿔야 세워지는 품격을 송두리째 실추시키기도 한다.

며칠 전 일본에서 전직 공안조사청 장관이 체포됐다. 그 기관은 폭력적 파괴활동을 단속한다. 조총련은 그 대상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퇴직 후 조총련의 고문 변호사가 되었다. 윤리면에서 적절치 않았다.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불량채권문제로 조총련 본부 건물이 경매에 부쳐질 지경이 되자, 그 사실을 알고서는 미리 매매계약을 체결케 중개하고 알선했다. 물론 돈은 오가지 않았다. 서류 상으로만 팔고 샀다. 등기까지 마친 혐의였다. 불법행위였다. 극단의 케이스다. 하지만 이런 유형의 비리는 비일비재하다. 일단 터지면 가진 자들의 유착으로 비화되고 회자되는 판국이다. 청탁과 연계라는 행위의 본질보다 금력과 권력 자체가 단죄의 대상이 되곤 한다. 세상이 불공정하다는 인식이 깊게 각인되어서다.

물러나는 선배로부터 글이 왔다. 34년 동안 집과 일터를 오가던 행위를 접었다는 소식이었다. 매일 무심코 내리던 현관이 없어졌고, 나섬과 일함과 돌아옴이 상실됐다고 한다. 그 크기와 무게를 나는 안다. 그런데 선배는 담담했다. 처음으로 돌아간다고 했다.

"국내외 어떤 보직에서도 최선을 다 했습니다. 배를 함께 타고 고락을 같이 하며 데려다 준 분들을 가슴에 품습니다. 직장생애의 고향, 우리회사는 이제 밖에서 어루만집니다. 오랜 기간 너무 좋은 분들과 함께 했습니다. 행복이었습니다."

누구나 살면서 동시에 죽음을 향해 간다. 모두에게 취직이라는 처음과 퇴직이라는 끝이 예정되어 있다. 미리 손 턴 후를 걱정하는 어리석음에 빠진 후배들에게 말한다. 현역시절의 후회 없는 열정이 최상의 은퇴책이라고. 그런 시간 있으면 바로 지금에 투자하라고.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