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교 유감(2)
폐교 유감(2)
  • 박영자 수필가
  • 승인 2022.05.12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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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박영자 수필가
박영자 수필가

 

산모롱이를 돌아 우리들의 목적지인 나의 초임지 야동초교에 들어섰을 때, 장난감 같은 단층의 교사가 썰렁하여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기대에 어긋나게 이 학교는 10여 년 전에 폐교 되었고, 내가 쓰던 서쪽 별관 교사 두 칸에 충주 사람이 카페를 차려 예쁘게 꾸며 놓고 운영하고 있었다. 커피 두 잔을 시켜 놓고 누가 이 카페에 들를까 싶었는데 동네 사람과 때로는 이 학교 졸업생들이 찾아주어 심심치는 않다니 그나마 다행이다.

열아홉시절의 나를 교단에 세워보고 빈 교실을 기웃거리다 학교를 뒤로하고 나오며 또 주체 할 수 없이 눈물이 쏟아졌다. 이 나이에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자취 하던 집 앞을 지나 하숙 하던 집 앞을 누가 볼세라 바람처럼 지나며 만감이 교차된다. 지금 그 분 들은 살아 계시기나 하는 건지. 참으로 무정한 세월이었다. 충주로 다시 돌아오는 길에 우리들의 추억이야기는 끝이 없었다.

오늘은 코로나가 진정 기미를 보인다 하여 오랜만에 바람 좀 쐬자는 후배가 있어 보은 쪽으로 달리며 전에 가본 식당에서 보리밥을 비벼 먹고 드라이브를 시켜주겠다기에 별로 멀지 않은 내북초교에 가보고 싶다고 했더니 흔쾌히 맞장구를 친다. 아이들의 재깔거리는 소리가 듣고 싶고 노는 모습을 기대하며 교정에 들어섰는데 나는 다시 실망하고 말았다.

우리차가 교정에 들어서서 운동장을 한 바퀴 돌았는데도 아이들은커녕 사람의 기척조차 없이 쥐죽은 듯 고요하다. 현관 앞에 차를 세웠을 때야 중년의 남자가 나온다. 의아해 하는 그 분에게 전에 이 학교에 근무 했던 사람이라며 내 신분을 밝히자 폐교된 지 한참 되었으며 지금은 장애인들을 위한 교육장으로 쓰인다는 말에 나는 또 한 번 가슴이 무너져 내렸다. 어쩌랴. 세상이 이렇듯 변한 것을... 내가 근무 했을 때만해도 12학급의 알찬 학교였다. 인근의 이 골짝 저 골짝에서 아이들이 모여들던 교육의 요람이었거늘...

최근 20년 동안 농어촌을 중심으로 학령인구가 크게 줄면서 학생 수 급감으로 문을 닫은 학교가 전국에 3,800여개라니 말해 무엇 하랴. 갈수록 늘어나는 폐교들이 더러는 매각 되고 임대 되는가 하면 방치되어 있는 폐교도 많다니 서글픈 현실이다.

결혼들을 안 하고 아이들을 안 낳으니, 유·소년층의 인구 비율은 크게 감소하고, 노년층의 인구 비율은 증가하는 저 출산·고령화 현상이 되어 노동력 부족, 경제 성장 둔화 등 심각한 문제가 회자 되고 있다. 어떤 학자는 인구 감소로 우리나라의 존망을 걱정하는 수준에 이르렀으니 어쩌면 좋단 말인가. 추억 여행의 뒤끝이 이렇듯 서글프고 씁쓸할 거면 아예 떠나지나 말 것을.

나는 집에 돌아와 내가 근무한 학교들을 차례차례 적어나갔다. 열세 학교 였다.

우암초교는 두 번이나 근무했고, 우리 아이들 둘 다 이 그 학교를 졸업했으니 얘깃거리가 제일 많다. 인터넷을 뒤져 그 학교들을 순례하며 현황을 파악해 보고 혼자 추억에 잠겨 울었다 웃었다를 반복하다 보니 봄날은 어느새 저만치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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