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가모니 부처님과 소태산 대종사
석가모니 부처님과 소태산 대종사
  • 박경전 원불교 청주상당교당 교무
  • 승인 2022.05.12 17:4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낮은자의 목소리
박경전  원불교 청주상당교당 교무
박경전 원불교 청주상당교당 교무

 

꽃을 사러 꽃집에 갔다. 예년과 다르게 꽃이 무척 비쌌다. “어버이날에 부처님까지 오셔서 꽃값이 더 비쌉니다.” 꽃집 주인의 설명이었다. 부처님을 원망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인간들의 이해타산에 부처님을 핑계로 삼는 것이 못마땅할 뿐이었다.

불교 이야기가 아니라 석가모니 부처님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원불교는 불교를 연원으로 삼지 않았다. 교조이신 소태산 대종사님께서 석가모니 부처님의 일생과 가르침을 보시고 부처님께 연원을 정했을 뿐이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가르침은 모든 인류가 존중하고 경청해야 할 가르침이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가르침과 소태산 대종사님의 가르침은 일맥상통한다. 시대와 상황이 다를 뿐 그 본의가 같으신 것이다. 그렇기에 원불교의 연원은 석가모니 부처님인 것이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탄생 일성은`천상천하 유아독존 삼계개고 아당안지'이다. 마야부인의 겨드랑이로 나와 사방으로 일곱 발짝을 걸으시고 하신 말씀이라고 한다. 지극히 설화적이다. 부처님께서 태어나셔서 그렇게 말했을 리 없다. 그저 부처님이 열반하시고 그 제자들이 부처님의 일생을 정리하고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정리하여 만든 말일 것이다.

천상천하 유아독존 - 하늘 위와 하늘 아래, 오직 나만 홀로 존귀하다. 하늘 위, 천상은 신들의 세계이다. 그리고 하늘 아래, 천하는 인간의 세계이다. 그 당시 인간들의 관심은 신과 물질이었다. 수많은 종교와 수많은 신들, 그리고 오직 일신의 안락과 탐욕의 대상인 물질이 인간들을 지배하는 시대였다. 자신의 정체성을 잊은 채 오직 그것들을 구하고 더 많이 갖기 위해 살아가는 삶이었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사람들에게 말한 것이다. 너희들이 모시고 있는 신과 너희들이 구하고 있는 돈(물질)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오직 참 나가 존귀한 것이다. 스스로에게 갊아있는 참 나를 찾고 존귀해져야 한다.

삼계개고 아당안지 - 삼계가 모두 고통이다. 내가 마땅히 편안함에 이르게 하리라.

석가모니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고 그저 자신의 성불에 만족하였다면 지금 이렇게 `부처님 오신 날'같은 경축 행사는 있지 않았을 것이다. 부처님은 물질의 노예 생활을 하는 인간들의 세상이 고통으로 가득 차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 고통에 몸부림치는 모든 이들에게 자신 있게 말했다. 모두를 편안함에 이르게 하겠다고.

석가모니 부처님 이전에도 깨달은 사람들은 있었다. 그리고 그 후에도 있었을 것이다. 그들은 자신의 성취에 만족하고 육도 윤회에서 벗어나 니르바나(열반)에 이르렀을 것이다. 하지만 석가모니 부처님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자신의 깨달음을 자신이 아니라 타인을 위해 사용한 것이다. 그것이 석가모니 부처님의 위대한 점이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탄생일성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사상과 일생이 그대로 담겨 있는 귀한 문장이다. 천상천하 유아독존 삼계개고 아당안지 - 하늘 위와 하늘 아래, 오직 나만 홀로 존귀하다. 삼계가 모두 고통이다. 내가 마땅히 편안함에 이르게 하리라.

시대와 상황이 많이 변했다. 소태산 대종사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

인간들의 눈은 더 이상 신을 쳐다보지 않게 되었다. 신 역시 인간의 탐욕을 채워주는 도구가 된 지 오래다. 탐욕의 대상은 오직 물질이다. 더 좋은 차와 집, 더 많은 돈을 위해 기꺼이 노예생활을 한다. 오로지 정신개벽이 필요한 시대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