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비도 암수가 있을까
고비도 암수가 있을까
  • 우래제 전 중등교사
  • 승인 2022.05.11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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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이 들려주는 과학이야기
우래제 전 중등교사
우래제 전 중등교사

 

`어젯밤 좋은 비로 산채가 살쪘으니. 광주리 옆에 끼고 산중에 들어간다./ 주먹 같은 고사리요 향기로운 곰취로다. 빛깔 좋은 고비나물 맛 좋은 어아리다./ 도라지 굵은 것과 삽주 순 연한 것을/ 낱낱이 캐어내고 국 끓이고 나물 무쳐/ 취 한 쌈 입에 넣고 국한번 마신다. 입 안의 맑은 향기 삼키기가 아깝다.(전원사시가 중 `봄')

여름을 재촉하듯 비가 자주 내렸다. 여러 가지 씨앗을 뿌려야 하는 농부에게는 단비다. 엊그제 비 내렸으니 오늘쯤은 고비가 쑥 올라오지 않았을까? 고비 산지를 잘 아는 처남 내외와 고비 꺾으러 나섰다. 피발령보다 더 가파른 꼬불꼬불한 일차선 시멘트 포장길을 따라가다 비포장이 나올쯤 차를 세우고 또 한참을 걸었다. 어느 골짜기에 이르러 두 팀으로 나눠 산을 올랐다.

산을 오르니 성질 급한 놈들은 잎이 활짝 피어 있고 늦둥이는 올라올 기미도 없다. 한참만에 조그만 배낭이 거의 다 찼다. 산 정상쯤 이르러 준비해 온 김밥을 먹으러 다시 두 팀이 만났다. 점심 먹으며 처남댁이 하는 말 “고비 끝이 파란 것은 질기고 맛이 없으니 꺾지 마세요.” “수놈이라 그렇지요, 그래도 먹을 수 있어요” 무심코 내뱉은 말이다. 어릴 때 할머니께서 꺾어온 고비를 다듬어 본 적이 있어 무심코 튀어나온 것이다.

정말 고비도 암수가 있는 것일까? 정말 그놈은 질기고 맛이 없을까? 고비는 양치식물로 고사리와 비슷한 식물이다. 고비는 고사리보다 연하고 씹는 맛이 좋다. 그리고 하루만 지나도 채취하기 어려울 정도로 빨리 성장하기에 채취가 쉽지 않다. 고사리는 땅속줄기가 길어 끝이나 중간에 가지를 쳐서 하나씩 올라오지만 고비는 땅속줄기가 짧고 굵어 덩어리 모양을 이룬다.

고비의 어린잎은 둘둘 말려 있고 흰 솜털로 싸여 있다. 고사리는 잎 뒷면에 포자주머니가 생겨 포자를 만들어 번식한다. 그러나 고비의 잎은 고사리와 달리 포자엽과 영양엽 두 가지로 구별된다. 포자엽은 번식을 위해 포자(홀씨)를 만드는 잎이고, 영양엽은 포자를 만들지 않고 탄소동화작용(광합성)만 하는 잎이다. 보통 포자엽이 먼저 나온 다음 영양 잎이 나온다. 아무래도 후손을 남기는 일이 급한 일, 그래서 영양 잎 보다 먼저 나오는 모양이다. 고비는 풀고비, 팥고비, 탈고비, 참고비, 말고비, 호랑고비(관중) 등이 있다. 대부분 먹을 수 있는데 누런 털이 있는 호랑고비는 독성이 있어 먹을 수 없다.

오랜만에 고비 한 배낭 풀어놓고 손질을 한다. 질겨 보이는 줄기(잎자루)는 잘라내고, 어린잎을 싸고 있는 솜털도 제거한다. 포자잎은 잘 부서지니 전부 떼어낸다. 그러다 산에서 한 말이 생각난다. “수놈이라 질기고 맛이 없지요” 이런 무식한! 명색이 평생을 중등생물교사로 지낸 사람이 어찌 그런 말을 했단 말인가? 포자잎을 수놈이라니? 차라리 암놈이라고 했으면 덜 무식하다 했을 텐데. 포자잎은 영양잎보다 먼저 나오기에 더 질길 수 있다. 그러나 맛없다고 수놈이라니! 퇴직하길 참 잘했다. 그러나 궁금하다. 정말 포자엽이 더 맛이 없는지는 영양학적으로 분석해볼 문제다. 고비 넣고 끓인 육개장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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