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체벌하십니까…"꽃이라도 한 대 때리면 아동학대"
아직도 체벌하십니까…"꽃이라도 한 대 때리면 아동학대"
  • 뉴시스 기자
  • 승인 2022.05.05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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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 징계권' 폐지됐지만 부모 66% "몰랐다"
"체벌해도 된다는 생각이 아동학대로 이어져"

체벌, 아동 인지능력·자존감 떨어뜨려 악영향



생후 16개월된 입양아를 학대해 숨지게 한 정인이 사건을 계기로 지난해 자녀 체벌 규정이 폐지됐다. 한국은 62번째 체벌금지국가가 됐지만 훈육을 위해 아이를 체벌해도 된다는 인식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5일 뉴시스 취재에 따르면 전문가들은 부모의 체벌이 학대로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봤다. 타인은 함부로 때리지 않으면서 아이를 체벌하는 것은 아동을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하지 않는 것과 같다는 지적이다.



한국은 '아동을 보호하고 권리를 실현한다'는 유엔아동권리협약에 서명한 국가다. 100번째 어린이날을 맞아 아동의 '맞지 않을 권리' 정착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짚어봤다.



◆'자녀 징계권' 63년 만에 폐지됐지만 부모 66% '몰랐다'



"가정 내 체벌금지를 법에 명시해야 하는 이유는 부모들을 범법자로 만들려는 게 아니라, 아이들도 성인들과 똑같은 정도로 모든 종류의 폭력에서 법적 보호를 받을 권리를 갖고 있음을 분명히 하기 위해서다."



세이브더칠드런 사업본부장과 여성가족부 차관을 지낸 김희경 작가가 지난 2017년 저서 '이상한 정상가족'에 쓴 문장이다.



이로부터 4년이 지난 2021년 1월 '자녀를 보호 또는 교양하기 위해서 필요한 징계를 할 수 있다'는 민법상 징계권 조항이 삭제됐다. 아동학대 사건에서 부모의 폭력을 정당화하는 데 악용돼 왔던 조항이었다.



체벌 금지가 법에 명문화되지는 않았지만, 아동의 입지를 높였다는 데 의의가 있다. 세이브더칠드런 관계자는 "아동을 더 이상 부모가 통제하고 체벌할 수 있는 존재로 보지 말자는 것이 법의 취지"라며 "어른들끼리는 상대가 잘못했다고 때릴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아동도 성인처럼 존엄성이 있는 존재란 것을 천명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아직 이런 내용을 모르는 부모가 대부분이다. 지난해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이 징계권 삭제 100일을 맞아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한 부모 중 66.7%는 징계권 삭제로 부모의 자녀 체벌이 금지됐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심지어 응답자 60.7%는 '징계권 삭제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체벌이 필요하다'고 답했으며 50.3%는 '훈육을 위해 체벌을 사용하는 것에 동의한다'고 응답했다.



◆아동학대 10건 중 8건은 '가정'…체벌이 학대로



문제는 체벌과 학대의 경계가 모호하다는 것이다.



보건복지부가 지난해 6월 발간한 '전국아동학대현황보고서'에 따르면 2019년 일어난 아동학대는 3만45건으로 1년 전(2만4604건)보다 약 22%(5400여 건) 늘었다. 2020년에는 3만8929건으로 재차 증가했다.



2019년 조사에서 아동학대 행위자의 75.6%는 부모였으며, 가정 내에서 발생한 경우가 79.5%에 달했다. 코로나19 장기화로 지난해 가정 내 아동학대가 더욱 증가했을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도 제기된다.



전문가들은 '체벌해도 된다'는 생각이 결국 아동학대로 이어진다고 지적한다.



정선아 숙명여대 아동복지학부 교수는 "아동학대 사건 가해자들은 대부분 '사랑의 매'였다고 말한다. 체벌이 학대가 될 수 있다는 걸 인지하지 못한 것"이라며 "징계권 폐지의 의미는 아이를 한 대라도 때리면 체벌이므로 훈육을 명목으로 아이를 때릴 수 없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1979년 세계 최초로 자녀 체벌을 금지한 스웨덴은 1960년대 자녀에게 체벌을 사용한 부모 비율이 90%에 달했으나 2010년대에는 10%대까지 감소했다. 지금은 전 세계에서 아동학대가 가장 적은 나라 중 하나로 아동 인권보호를 선도하는 나라로 자리매김했다.



◆정부, 체벌금지 홍보 캠페인…아동 발달에 악영향



스웨덴은 징계권 폐지 직후 정부 차원의 적극적 홍보로 국민들의 인식을 빠르게 바꿨다.



아동보호단체 등에 따르면, 스웨덴은 우유팩에 아동 체벌 금지를 알리는 만화를 넣고 '훈육 가이드라인'을 리플렛으로 제작해 모든 가정에 배포했다. 그 결과 법 도입 2년 뒤 스웨덴 부모의 90%가 체벌이 불법이란 점을 인지했다.



우리나라도 아동보호단체들의 끈질긴 요구로 정부가 체벌금지 홍보 캠페인에 나섰다.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9월부터 아동권리보장원, 세이브더칠드런 등 시민단체들과 함께 '아이마음 아이다음'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세이브더칠드런은 '체벌 대신 아이를 어떻게 훈육할 수 있냐'는 질문에 "체벌을 어떤 것으로 대체하자고 접근하기보다 아이를 존중하고, 신뢰를 쌓으면서 훈육하는 자세에 중점을 둬야 한다"고 답했다.



정 교수도 "아이의 의견을 듣지 않고 부모가 판단해버리는 게 문제"라며 "일방적으로 징계하기보다 아이와 대화를 통해 이해하려는 노력을 하고 훈육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체벌이 아동 발달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점은 많은 연구로 증명됐다. 미국 텍사스대 엘리자베스 거쇼프 교수팀은 체벌 효과와 관련한 111건의 연구를 분석해 체벌이 훈육에 도움이 된다는 과학적 증거는 없다고 발표했다. 반면 아동의 인지 능력과 자존감을 낮추는 부정적 영향이 더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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