껍데기 없는 달걀은 없다
껍데기 없는 달걀은 없다
  • 권혁두 기자
  • 승인 2022.05.01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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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권혁두 국장
권혁두 국장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지난 주 지역균형 발전 계획을 발표했다. 이 계획의 핵심은 `기회발전특구' 조성이다. 지방에 기회발전특구를 만들고 이전하는 기업에 취득·재산·법인·소득세 등 온갖 세제 혜택과 각종 규제 면제의 특혜를 주겠다는 것이다. 지역 균형발전을 위한 15대 국정과제도 발표했다. 혁신성장기반 강화를 통한 좋은 일자리 창출, 지방분권·지방재정력 강화, 지방 투자 및 기업의 지방이전 촉진, 공공기관 지방 이전, 지역 특화 사회문화 인프라 강화 등 영양실조로 죽어가는 지방을 살려낼 처방들이 총 망라됐다. 10조원 규모의 균형발전특별회계도 국가 재정에 맞춰 확대하겠다고 했다.

자못 거창해 보이지만 세상의 반응은 냉랭하다. 국가의 큰 축인 지방의 소멸, 즉 국가의 존립과 직결된 사안이지만 정책 수혜지인 지방으로부터도 주목을 끌지 못하고 있다. `검수완박'을 둘러싼 사생결단의 정쟁에 가려졌기도 했지만 정권이 들어설 때마다 되풀이돼온 재탕 정책에 지방인들이 식상해진 탓이 크다. 앞으로 30년 내에 100개 이상의 군소 지자체가 지도에서 지워질 것이라는 과학적 예측을 `설마'하는 심리적 낙관주의가 희석시킨 결과일 수도 있겠다. 지방의 체념이 깊어져 어쩔 수 없다는 운명론이 대세가 됐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지방선거를 앞두고 급조한 흔적이 역력한 새 정부의 균형발전 정책은 지방에 대한 우롱이요 기만처럼 보인다. 균형발전계획과 달리 지금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는 새 정부 공약은 수도권 광역급행철도(GTX) 확충이다. 이번 대선에서 윤석열 당선인과 이재명 민주당 후보는 경쟁적으로 GTX 신설 및 연장을 공약했다. 두 후보 모두 현재의 4개 노선을 연장하겠다고 했고 윤 당선인은 3개 노선을 새로 만들겠다고 했다. 경기도와 서울 접근성을 높여 수도권 일체화를 앞당기겠다는 구상이다. 예상되는 노선과 역 주변의 부동산값이 벌써부터 들썩여 집과 땅 주인들은 돈벼락 맞을 준비에 들떠있다고 한다. 이 사업에 최소 100조원 이상이 든다고 하지만 실제로 얼마나 더 투입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정부가 말라죽어가는 지방 회생을 위해 마련하겠다는 균형발전특별회계는 10조원이다.

지방의 수십배에 달하는 예산을 이미 고도비만에 빠진 수도권 생활 인프라 확충에 쏟아부우면서 균형발전 운운하는 것은 코미디에 가깝다. 발표한 균형발전계획 가운데 그나마 구체성을 띤 것은 기회발전특구 조성과 균형발전특별회계 증액이다. 특구는 용지를 무상 제공하는 수준으로 입주 기업에 대한 혜택을 파격적으로 확대하고, 균형발전특별회계는 수도권 GTX 예산 규모로 확대해야 한다.

`나의 해방일지'라는 드라마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서울이 노른자라면 경기도는 흰자에 불과하다. 경기도 한 위성도시에서 서울로 마을버스와 전철을 갈아타며 고된 출퇴근을 해야하는 젊은 직장인의 푸념이다. 서울에 집을 마련해 내로라 하는 서울 사람이 되는 것이 그의 꿈이요 지상과제이다. 지방의 로망인 수도권에도 서울과 경기도 사이에는 쉽게 넘을 수 없는 벽이 가로막고 있다는 얘기다. 수도권 GTX 확충은 흰자를 노른자에 편입시켜 노른자만 있는 달걀을 만들겠다는 구상에 다름 아니다. 서울이 노른자고 경기도가 흰자라면 경기도 밖의 지방은 무엇일까? 달걀에서 노른자와 흰자를 빼면 남는 건 껍질 밖에 없다. 그런데 달걀은 껍질 없이 존재할 수 없다. 흰자가 몽땅 노른자가 된다한들 단단한 껍데기가 받쳐주지 않으면 달걀의 형체를 유지할 수 있겠는가. 이제라도 정부가 지역 균형발전에 사활을 걸지않으면 껍질 없어진 달걀이 무너져 내리듯 국가 전체가 해체 위기에 빠질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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