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때문에
이름 때문에
  • 장민정 시인
  • 승인 2022.04.25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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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장민정 시인
장민정 시인

 

나는 1942년생이다. 해방 전 창씨개명이 한창일 때여서 부끄러운 역사의 흔적이 내 이름에 남아 있다. 정자(靜子)라 쓰고 `스에꼬'라 불렀다는 내 이름, 그간 여러 번 개명 신청을 하려다 만 체 아직도 서류상에는 靜子이다.

초등학교 시절, 그때는 국민학교라 했고 한 반에 70여 명이 넘는 학생이 그야말로 빼곡하게 앉아 공부하던 시절, 여자반인 우리 반 출석부에는 서너 명을 제외한 모든 이름에 춘자 옥자 영자 순자 민자 수자 정자 경자 등등 子字 돌림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정자, 정자가 뭐야? 子짜만 아니어도 나 이런 말 안 해!”

“세상에, 선생님씩이나 하신 분이 딸 이름을!”

아버지가 어려워서 군입 한 번 때지 못하던 내가 마음 먹고 불평을 쏟아낸 적이 있었다.

그때 아버지는 “그래도 많이 고심하면서 지은 이름인데, 그렇게 마음에 안 드느냐” 하시면서 이름 지은 내력을 변명 삼아 말씀해 주셨다.

조선총독부가 `조선민사령(朝鮮民事令)'을 개정해 조선에서도 일본식 씨명제(氏名制)를 따르도록 한 것이 1940년이다. 그해 8월까지 80% 이상의 조선인이 창씨개명을 신고했다고 들었다.

창씨개명 하지 않으면 배급도 끊어버린다고 하니 어쩌겠는가? 태평양 전쟁 말기 일제 패망 직전에는 당연히 이 비율은 100%에 육박했었다.

일본식으로 아들 子 짜는 써야 하니 나머지 한자가 문제인데 임오생이니 말띠 아닌가? 일본이나 조선이나 여자 말띠는 팔자가 드세다는 통념을 가지고 있던 터라 아무도 말띠 딸을 낳고 싶어 하지 않았다. 내 딸이 커서 사당패처럼 밖으로 나돌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앞서 생각하고 생각해서 지은 이름이 고요할 <靜> 자라고 하셨다.

제발 여자답게 조용히 살라는….



`불러 주기 전에는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지만, 내가 불러 주어서 꽃이 되었다'는 김춘수 님의 시가 아니어도 사람에게 이름은 중요하다. 靜아, 靜아 라고 끝없이 불러 주어서 나는 이름대로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남들과 잘 어울리지도 못하고 감정도 잘 드러내지 못하는 내향적인 나로 형성되는데 靜子란 이름이 지대한 역할을 한 것이라는 생각, 그러면서도 끊고 맺지 못하는 성격 탓에 아직도 그 이름을 그냥 지니고 살면서 이런 시나 쓰고 있으니 말이다.



먼 그늘 <閨怨歌>

사당패는 이미 떠나고 없다

임오년 팔월 열이튿날, 가을비 며칠을 추적거려서

담뱃진 같은 낙숫물 고인 파장의 저잣거리를 돌아 집에 들어서는 아비

<내내 귀속에서 풍물 소리가 울어야, 말띠 딸년이 사당패처럼 훌떡훌떡 싸돌면 어쩌누> 자꾸 귀를 후비다가 불 인두로 낙인을 찍듯

고요할 정(靜) 字를 눌러 쓰셨다는데



계집아이 낳은 것이 위센감!

산 구완 미역국도 못 든 죄 많은 어미는 추석 김치 담그러 학독에 고추를 갈다가

피그르 주저앉고 말았다는데



말소리 담 넘지 말거라, 어흠, 아비는 탱자울 가시담을 두르고

그저, 그저 있는 듯 없는 듯 살으래이, 할미는 등을 밀어 뒷방 문을 잠갔다



사라진 풍물 소리는 아랫목 횃대에 주렁주렁

깨알 같은 주문들이 웅얼웅얼

문구멍 뚫고 달빛 쏟아지는 세상 내다보는 밤



늘어진 젖통이 흔들며 어미 소

볏단 수북한 달구지 끌고 사립문 들어서는

삐그덕 빼그덕 쇠바퀴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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