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에만 책임을 묻는가? 
검찰에만 책임을 묻는가? 
  • 권혁두 기자
  • 승인 2022.04.24 19: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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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권혁두 국장
권혁두 국장

 

찬반 논란이 뜨거웠던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이 마침내 현실이 됐다.

검찰은 더 이상 `무소불위'라는 수식을 달 수 없게 됐다. 박병석 국회의장이 내놓은 중재 법안을 여야가 수용하며 이달 중 처리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검찰은 지휘부 총사퇴로 맞서고 있지만 제 3당까지 동의한 법안을 되돌리기에는 역부족으로 보인다.

법안이 공포되면 4개월 안에 검찰은 6대 범죄 가운데 부패·경제 범죄만 담당하게 된다. 나머지 공직자·선거·방위사업·대형참사 등 4대 범죄 수사는 경찰 등으로 이관된다. 이나마도 중대범죄수사청을 설립할 때까지 1년여 정도만 유지되고 이후에는 어떤 범죄에 대해서건 자체적으로 수사권을 발동할 수 없다. 경찰이 송치한 사건에 대한 보완수사권만, 그것도 아주 제한적으로 행사할 수 있다. 사실상 기소 전담 검찰로 변신하는 셈이다.

여야는 벼랑끝에서 극적인 협치를 이뤄냈다고 자화자찬 하지만 법안은 찬사보다 비판을 더 받는다. 당장 위헌 시비가 불거져 새로운 논란이 야기될 공산이 높다. 검찰이 위헌소송을 제기해 헌법재판소에서 존속 여부를 다룰 가능성도 있다. 65년 만의 형사사법 체계 대변혁을 수사 공백없이 안착시키기에는 유예기간이 너무 짧다는 지적도 많다. 졸속 추진한 공수처의 초라한 현주소를 목도하고 있는 국민들에게 1년 6개월 내에 중수청을 발족하겠다는 촉박한 일정도 미덥잖다.

특히 검찰의 직접수사 대상에서 선거·공직자 범죄를 제외한 대목에선 여야가 야합한 냄새가 진동한다. 검수완박을 나라를 망칠 폭거라며 결사 반대했던 국민의힘이 돌연 입장을 바꾼 배경을 정치인에 대한 검찰의 수사를 원천 봉쇄한 이 조문에서 찾는 사람들이 많다. 어쨌든 국회는 1년 6개월이라는 준비기간을 효율적이고 지혜롭게 활용해 부작용 없이 체제를 정비해야 한다. 실패한다면 젯밥에 눈이 멀어 뒷거래를 했다는 혐의를 벗지 못할 것이다.

짚고 넘어갈 부분이 하나 더 있다. 정치권에서는 반발하는 검찰에 대해 결과를 자초했다는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그른 얘기는 아니다. 검찰의 과거사에는 정의와 공정, 정치적 중립에 등을 돌렸던 사례들이 넘쳐난다. 국가기관 국민 신뢰도 조사에서 늘 바닥권을 헤맸다. 검찰개혁이 시대의 화두로 떠올랐을 때조차도 국민이 공감할 반성과 개혁의지를 보여주지 못했다.

그러나 다른 곳도 아닌 정치권에서 검찰의 자업자득을 질타하는 모습에는 동조할 수 없다. 검찰에 `무소불위'라는 완장을 채워주고 정권의 사수대로 전락시킨 검찰 바깥의 존재에는 눈을 감고 있기 때문이다. 검찰은 스스로 타락하기보다는 정치권력의 유혹과 회유, 압박에 야합한 정황이 짙다. 그 굴복에 책임을 물으려면 공모한 공범에게도 같은 무게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 검찰에 온갖 허물을 제공하며 정치판을 좌지우지할 정도의 파워를 갖게 한 장본인 역시 정치인들이다. 아무런 부끄러움도 없이 검찰의 몰락을 감상하는 그들의 모습이 그래서 역겨운 것이다.

적지않은 국민들은 이런 의문을 갖고 있다. 만약 검찰이 그만 멈춰달라는 청와대 요청을 받아들여 조국 수사를 접었다면,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을 못들은 척 넘겼다면, 월성원전 경제성 조작 의혹을 덮었다면 검찰이 지금과 같은 운명을 맞았을까? 이 의문에 확신을 갖지 못하는 국민들은 검수완박에 따라붙는 아름다운 명분들이 영 꺼림칙하다.

문재인 대통령이 노무현재단 이사장 시절인 2011년 당시 김인회 인하대 교수와 함께 펴낸 책 `문재인, 김인회의 검찰을 생각한다'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정치가 스스로 개혁하지 못하면 그 역할을 검찰이 담당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정치는 검찰에 종속된다'. 검찰의 정치화와 전횡에 대한 1차적 책임을 정치에 지운 비수 같은 말이다. 지금 검찰의 처지를 비아냥대며 희희낙락하는 낯두꺼운 정치인들, 특히 여권에서 새겨들을 명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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