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고 싶은 마음이 든다는 건
날고 싶은 마음이 든다는 건
  • 신은진 한국독서심리상담학회장
  • 승인 2022.04.21 17: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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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그릇에 담긴 우리 이야기
신은진 한국독서심리상담학회장
신은진 한국독서심리상담학회장

 

봄바람이 좋은 날들이다. 봄밤을 즐기는 청년들이 삼삼오오 강변에 가득하다. 친구 또는 연인, 지인들과 긴 밤 무슨 이야기가 그리 많은지 밤이 다 가도록 자리를 뜨지 않는다. 이러한 장면은 보는 이에 따라 다른 반응을 보일 수 있다. 혀를 차며 석연치 않아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부러워하는 이도 있을 것이고 `예쁘고 건강하다' 생각하며 바라보는 이도 있을 것이다. 20대와 30대의 자녀를 둔 나는, 사람들과 어울리며 인생을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을 보면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어 다행이라며 안심한다.

하고 싶은 것이 있고, 그것을 사람들과 나누고, 힘을 얻고, 펼치는 과정은 정말 중요하다. 나이에 따라, 상황에 따라, 때마다 하고 싶은 이야기는 달라지고 꿈도 바뀌기 마련이다. 이렇게 자연스러운 일상이 당연한 것 같지만 누군가에겐 당연하지 않은 일상이다. 무슨 이유인지 그것이 어려운 이들이 있다.

우리가 아는 독수리는 날짐승 중의 제왕으로 그 용맹함이 천둥과 같다 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 한 남자에게 잡혀 와 길러진 독수리가 있다. `날고 싶지 않은 독수리(제임스 애그레이 글/볼프 에를부르흐 그림/김경연 옮김/풀빛)'가 바로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새를 집에서 키우고 싶은 남자에게 잡혀 온 어린 독수리는 암탉, 수탉, 오리와 함께 닭 모이를 먹으며 자란다. 그리고 5년이 지나 동물학자에게 발견된다. “저 새는 닭이 아니라 독수리야.”라는 동물학자의 말에 남자는 “닭이 되도록 가르쳤다네. 날개가 3미터나 되어도 독수리가 아니라 닭이라네.”라고 말한다. 저 새는 독수리일까? 닭일까?

독수리의 마음을 갖고 있을 거라고 확신한 동물학자는 지붕 위로 올라가 날려보지만, 독수리는 닭장으로 돌아간다. 동물학자는 도시를 빠져나와 저 멀리 높은 산꼭대기로 간다. 과연 독수리는 날 수 있을까.

`날고 싶지 않은 독수리'를 쓴 제임스 애그레이는 아프리카 가나사람이다. 그는 백인들의 지배를 받는 아프리카인을 위해 오래전에 이 이야기를 썼다고 한다. 나에게 독수리는 시공간을 초월해 정체성을 잃은 채 주어진 삶에 길들여지고, 그것에 만족하며 살아가는 우리가 아닐까 싶다. 정체성을 갖지 못한다는 것은 자율성과 연관이 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지금, 나로 존재하는가에 대한 물음표를 던진 적이 있는가. 내 안의 놀라운 잠재력을 모른 채, 주어진 삶에 만족하며 삶이 과연 행복하다 할 수 있는가.

누군가는 독수리가 원한다면 그대로 있어도 행복하지 않겠느냐고 말한다. `독수리는 만족하고 행복했을 거야'라고 말한 남자는, 집에서 키울만한 새를 찾아 떠났다가 독수리를 발견하고, 집으로 데려온 자신에게 만족한 것이 아닐까 싶다. 이 남자의 만족감을 독수리의 행복으로 규정지을 수는 없다. 독수리가 행복할 것이라는 생각은 자신의 만족감을 독수리에게 투사했다고 볼 수 있다.

독수리가 3m의 날개를 활짝 펼치고 하늘로 날아가는 모습, 고공행진과 낙하를 보여주는 그 용맹함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끼치는 전율이 온다. 그 환희는 날지 않고서는 알 수 없다. 닭 모이가 아닌 스스로 사냥한 먹이를 먹는 그 성취감은 또 어떨까. 그런 후에도 독수리가 닭 우리로 돌아온다면 그 선택을 수용해야 한다. 하지만 시작도 하지 않는다면 어떨까.

독수리가 주어진 삶에서의 답답함을 안전함으로, 솟아오르는 욕구를 사치로 확신하며 정신 승리의 삶을 살기보다는 자신에게 물음을 던지며, 한 번도 추락하지 않은 것처럼 비상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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