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는 종에 멍에를 메지 말라.
다시는 종에 멍에를 메지 말라.
  • 충청타임즈
  • 승인 2007.08.14 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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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자의 목소리
이 인 수 <온누리수련원장 목사>

솔로몬 왕은 ‘지난날의 쓰라림을 회상한다는 것은 달갑지 않으나 새로운 각오를 다짐하기 위해서는 필요한 것이다’라고 했다. 1945년 8월 15일은 민족이 일제의 사슬에서 광복을 찾은 날이자 우리의 주권이 회복한 날이다.

3년 후인 1948년 8월은 독립정부를 수립했고, 올해 광복 62주년을 맞았다.

1910년 8월 22일 한·일합방으로 우리나라를 통째로 삼켰을 때 온 국민은 비탄에 빠지고 말았다.

일본은 만주를 침략하며 그 세력을 확대해 중국본토를 삼킬 음모를 꾸미게 됐고, 한국을 대륙침략의 전초기지로 삼고자 했다.

이를 위해 민족의 저항세력을 분쇄하고자 신사참배를 강요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이 작업에 가장 큰 장애물은 바로 교회였다. 그 만큼 교회는 민족주의 본산이었다.

일본은 조선교회를 박멸해 버리든가 아니면 일본에 대한 충성을 맹세한 교회로 만들든가 결단을 내리도록 했다. 신사참배 강요문제가 한참 극성을 떨던때 많은 교인들이 거부 운동을 전개하다 일본경찰에 체포돼 모진고문과 옥고로 죽음을 당했다.

당시 조국 독립을 위해 청춘을 바친 여성 독립운동가인 김마리 여사는 개화된 기독교 양반 가문에서 교육을 받고 자라 민족의식에 눈을 뜨면서 민족주의 정신이 형성됐다.

그녀가 정신여학교 졸업 후 일본으로 건너가 조선독립에서 활약하면서 3·1운동 후 체포돼 여성으로서 치욕적인 고문을 받아 병보석으로 출감됐다. 그녀가 살아나올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에 대한 신앙심과 독립정신 때문이었다. 그녀는 독립운동을 활발히 활동하다 1944년 조국 광복을 눈앞에 둔 채 별세했다.

한편 춘원 이광수는 당시 일본 총독부로부터 매달 600원(지금 약 450만원)을 받고 동아일보 ‘조선민족개론’ 논설을 통해 조선 민족에게는 희망이 없어 일본의 통치를 받아야 한다는 글을 공공연히 게재했다.

이처럼 민족의 지성이 이런 말을 할 때 시골교회 주일학교 교사였던 윤동주 시인은 일본 감옥 안에서 생체실험용으로 죽으면서 노래하길 “쫓아오던 햇빛인데 지금 예배당 꼭대기 십자가에 걸려 있다”고 했고, 조선의 한 지식인은 “슬프다 동포여 아는가 모르는가 꿈을 깨였는가? 수삼평의 가옥도 나의집이 아니며 시냇가의 물도 나의 물이 아니구나. 내 몸이 죽어서 묻힐 땅이 없으니 눈물을 금할 바 없어 울분을 제할 수 있겠는가?”라고 탄식하기도 했다.

‘다시는 종에 멍에를 메지 말라’(갈라디아서 5:1)

그리스도는 인간을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줬으니 굳세게 서서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고 했다. 이스라엘 민족역시 애굽의 노예살이에서 해방하고는 해방의 감격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광야 40년의 생활을 청산하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복지를 회복하는 광복의 경험을 갖게 됐다. 그 후 혼란의 시기를 거쳐 사울을 임금으로 세우고 명실공히 독립국가로 된 것이다.

이처럼 이스라엘 민족이 우리와 비슷한 경험을 가졌다는 사실에서 이스라엘 민족이 역사를 통해 역사하는 하나님의 뜻이 민족 가운데 어떻게 역사하고 계시는가를 생각해야 한다. 이스라엘 백성은 해방과 광복, 그리고 독립의 감격은 일순간이였고 다시 종살이를 하게 된 것이다.

이처럼 역사의 전철을 통해서 생각할 것은 조국의 광복을 위해 독립투사들의 노고가 있음을 부인하지는 않지만 역부족인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역사를 지배하는 하나님의 때가 되니 연합군은 몽둥이로 사용해 일본을 치고, 우리의 독립군 투사들이 광복을 이룩했으니 이제 다시는 나라를 빼앗기지 않도록 굳게 지켜 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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