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 불어드는 바람들
삶에 불어드는 바람들
  • 구숙진 KPCA 그림책 지도사
  • 승인 2022.04.14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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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그릇에 담긴 우리 이야기
구숙진 KPCA 그림책 지도사
구숙진 KPCA 그림책 지도사

 

내 삶에 바람은 얼마나 불었을까? 어떤 바람들이 지나고 갔고 또 어느 바람은 머물렀을까? 미간에 힘주고 실눈으로 그 시간을 바라보니 실바람, 건들바람, 노대바람, 싹쓸바람까지 수없이 지나갔다. 거개의 사람들은 그 바람이 멈추길 소망한다. 나 또한 그랬다. 그런 연유로 그림책 <바람이 멈출 때>가 내 손을 끈 것은 어쩌면 당연했다. `바람이 멈춘다는 것'이 정확히 말하면 `멈춘' 다는 것이 나를 끌었다.

<바람이 멈출 때/샬럿 졸로트 글|스테파노 비탈레 그림|김경연 옮김|풀빛>는 온종일 놀고도 낮을 그냥 보내야만 하는 것에 아쉬운 아이가 서운한 마음 가득 담아 질문하면, 정성을 다해 대답하는 엄마와 아이의 마주 이야기 그림책이다. 그림책은 이래서 좋다. 이 가볍고도 아름다운 책에서 삶의 다양한 주제들을 찾아낼 수 있어서 좋다. `멈춤'이라는 테제에 대해 생각할 겨를을 주어서 고맙다.

아이와 엄마는 묻고 대답한다. 왜 낮이 끝나야 하는지, 바람은 그치면 어디로 가는지, 파도는 모래에 부서지면 어떻게 되는지 등 일상에서 만나는 자연에 관한 질문들이다. 아이는 또 묻는다. “산은 봉우리를 넘으면 무엇이 되나요?” 여러분이라면 뭐라 답하겠는가. 산봉우리를 좀 넘어본 경험이 있는 어른이니 “산은 밑으로 내려가 골짜기가 되지.”라는 것쯤은 안다. 그리고 산은 밑으로 내려가고 내려가 끝을 마주하는 것이 아니라 산이 품었던 물이 모여 새로운 세계를 이룬 계곡을 만난다는 것도 안다. 아픔을 좀 겪어 본 어른이라면, 수없이 마주하는 고달픈 일도 지켜보며 버티다 보면 그게 끝은 아니라는 것도 안다. 품고 있던 물이 계곡을 만들어 내듯 아픔을 버틴 그 자리에 삶을 통찰할 수 있는 지혜의 결이 축적된다는 이 문구를 통해 알 수 있다.

아이의 질문은 계속 이어진다. 폭풍이 끝나면 비는 어디로 가는지, 구름은 흘러 어디로 가는지 끊임없이 묻는다. 두 눈에 사랑을 가득 담고 자연현상을 마주해야 가질 수 있는 의구심들이다. 사색의 시간이 필요한 물음들이다. 이에 답하는 엄마의 말에도 지혜가 담겨있다. 아이에게, 비는 구름이 되어 다른 폭풍을 만들러 가고 구름은 그늘을 만들러 가는 거라며 자연의 순환을 이해하고 생각할 겨를을 주는 답을 해 준다.

아이의 첫 질문으로 가 보자. “왜 낮이 끝나야 하나요? 낮이 끝나면 어디로 가나요?” 엄마는, 그래야 밤이 올 수 있고 그래야 밤이 시작된다고 말한다. 느닷없이 시작되고 느닷없이 끝나는 것은 없다는 말이다. 그리고 나직이 덧붙인다. “낮은 끝나지 않아. 어딘가 다른 곳에서 시작하지. … 이 세상에서 완전히 끝나는 건 없단다. 다른 곳에서 시작하거나 다른 모습으로 시작한단다.” 바람이 그치면 어디로 가냐는 아이의 물음에 “어딘가 다른 곳으로 불어가, 나무들을 춤추게 하지.”라고 답한다.

그렇다. 낮이 끝나는 게 아니듯 바람도 멈추는 게 아니다. 잠시 머물다 다른 곳으로 가고 다른 바람이 또 불어오는 것이다. 바람은 우리네 삶에도 불어 들어온다. 사람으로 인해 상처받고, 맘먹은 일이 제대로 되지 않아 좌절하고, 차근차근 올라섰던 계단에서 굴러 떨어질 땐 일어설 기력조차 없어 바닥과 한 몸이 되기도 한다. 그럴 때면 바람이 멈추길 소망한다. 잔잔한 바람이든 휘몰아치는 바람이든 멈춰주길 소원한다.

자연에서도 바람은 멈추는 게 아니듯 우리의 삶에서도 바람은 늘 함께한다는 것을 인지해야겠다. 멈춘다는 것은 자연에서도 있을 수 없듯 삶에 드나드는 바람이 멈추길 기대하기 보다 들여다봐야겠다. 그리고 내 안에 있는 바람을 기꺼이 타고 흘러가 봐야겠다. 여전히 내 가슴에서 수런거리는 바람 소리가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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