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올해만 그럴 것 같습니다
아마도 올해만 그럴 것 같습니다
  • 장민정 시인
  • 승인 2022.04.13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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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장민정 시인
장민정 시인

 

냉이꽃이 지천으로 바람에 흔들립니다.

4월의 중순이 코 앞인데 아직도 아침엔 쌀쌀하고 바람은 시샘하듯 옷 속을 파고듭니다. 마트에 가는 사람들 옷차림도 아직 겨울옷 그대로입니다.

괴산에 귀촌한 것도 벌써 13년째, 그해 겨울은 얼마나 길었던지요? 쓸쓸하고 외롭고 어설프던 날들, 마음 둘 데 없어 무척이나 힘들었던 겨울을 나면서 여의도의 봄 생각이 무던히 나기도 했습니다. 봄을 기다렸지요. 그러나 TV 속 봄소식은 만연한데도 좀체 산골의 봄은 더디기만 하더군요. 저는 오지 않는 봄을 원망하며 이런 시를 썼습니다.


봄은
남촌에서 위로위로 내달린다는 말
뻥이다

서울에서 고속도로 36번 지방도까지
두어 시간 쉬지 않고 달려 내려와야 하는 충북 괴산은
분명하고 확실한 서울의 남쪽일 터

너도나도 서울서울 한다고
추세 따라가는 건지
숨겨 둔 애인이 보채기라도 하는지

봄은
제주 부산 대전 찍고
껑충 서울 입성이라

여의도 윤중로에서
한 열흘 퍼질러 있다가
마지못해 되짚어 내려오는 봄

얼음골에 오자마자
온갖 꽃들 한꺼번에
호명하고 줄 세우느라 야단법석이다

-<건달 같은 봄>



그런데 오늘 아침 윤중로 벚꽃 길에서 마이크를 잡은 아나운서의 뒤로 보이는 벚꽃은 아직 활짝 피지 않았더이다.

청주 벚꽃 소식은 2~3일 전에 이미 들었고 이곳 괴산 문화원 뒤쪽 벚꽃들도 붉은 멍울로 가지 끝에 매달려 있습니다. 그동안 봄은 으레 서울부터 찾은 다음 마지못해 괴산에 오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말입니다.

오늘은 서울, 내일모레쯤 괴산의 벚꽃들 만발할 겁니다. 이쯤이면 평준화까진 아니어도 봄의 전령사 벚꽃의 갈 之자 걸음은 보폭이 많이 줄어든 것 같습니다.

왜 꽃 피는 간격이 좁혀졌을까요? 앞으로도 죽 그럴까요? 그렇다면 건달 같다고 원망하는 내 시가 앞으로는 거짓말이 될 것인데 말입니다.

왜 그럴까요? 지구 기후 변화의 외적 내적인 요인을 들추어 보기도 하고 북극의 곰을 떠올리기도 하고 만년설이 녹아내리는 섬뜩한 소식도 들추며 덧대어보아도 꼭 맞는 해답은 아닌 것 같고….

마스크를 하고 외출하면서 알았습니다. 참으로 안 갈데 못 갈 데 다 스며든 코로나가 봄마저 흔들어댄 거였어요.

사람들의 마스크를 하거나 두문불출하는 바람에 꽃들도 늦장을 부린 거였어요.

산속엔 언제나 건달 같은 봄이 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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