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임정’에서 ‘안전’까지
4월, ‘임정’에서 ‘안전’까지
  •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 승인 2022.04.12 19:0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수요단상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무언가에 짓눌린 듯 답답한 가슴앓이가 그저 벚꽃이 벌써 지고 있기 때문이라면 얼마나 다행인가.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새벽 꽃길이거나, 조급하게 치솟는 기온에 벌써부터 허덕이는 한낮일지라도 눈처럼 흩날리는 꽃잎의 하늘거림이 서글픈 게 어찌 낙화(落花)의 비장함 뿐 이겠는가. 
날은 서둘러 뜨거워지고, 갖가지 꽃들은 한꺼번에 피고지고 피고지기를 다투는 찬란함에도 내내 가슴이 서늘한 것은 아무래도 4월 때문일 것이다.
달력을 보니 4월은 어느 새 절반가량이나 지나고 있음에도, 봄꽃은 흐드러져 사람들이 모처럼 해방의 기운을 함부로 뿜어낸다고 해도 시린 가슴을 참아 넘기는 일은 아직 쉽지 않다. 4월 11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기념일을 월요일로 시작하는 이번 주는 특히 그렇다.
주권을 빼앗기고 국토를 잃어버린 망명정부의 서러움은 백년이 지나도록 온전한 기개로 남아 있는가. 의문은 사라지지 않고 있는데, 8년째 신음을 거두지 못하는 이 땅의 남쪽바다 뱅골수도의 날선 물빛이 어찌 온순하고 그윽하기를 바라겠는가.
4월11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기념일을 시작으로 4월 16일 토요일의 국가안전의 날에 이르기까지 이번 한 주 내내 나는 여태 죽음의 흔적마저 성하지 못한 세상의 그림자를 마주하고 있다. 그리하여 4월이면 어김없는 가슴앓이를 치유할 수 있는 희망을 얻지 못하고 있다.
무엇을 기념하고 기억하는 일은 대체로 대표성과 상징성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평범한 사람들의 거룩하고 주저함이 없는 죽음의 가치를 빠짐없이 기록되기를 바라는 마음도 간절하지만 대체로 민주적 대의성을 역사는 인정하고 있다.  
다만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이라는 본질이 진영의 논리에 따라 의심하고 훼손하려는 작태가 절대로 다시 시도되지 않기를 바라는 간절함이 전환시대의 막연한 기우로 살아남아 세월을 견디고 싶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선각자와 지도층의 망명정부. 그러므로 대표적 상징성을 갖는 기득권 세력의 진영논리로 독점되는 역사적 본질은 없다. 수탈된 왕권과 나라. 이를 고스란히 내다바친 수구세력의 잔재는 선진의 조국에서도 여태 청산되지 못하고 있다. 
지도자와 기득권 세력의 대표적 상징성의 바탕엔 나라를 위해 언제나 분연히 일어선 민중의 투쟁과 희생이 있다. 3·1운동은 민중의 거룩한 횃불이었으며,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건립은 그런 민중의 불씨로 이루어진 것이다. 그 흔들릴 수 없는 역사적 본질을 존엄하게 지키는 일이 진정한 국민통합의 시작이다.
「다시, 대한민국! 새로운 국민의 나라」라는 구호를 여전히 가슴 저린 4월에 ‘다시’ 조우한다.
‘국가 안전의 날’을 정해 다시는 국민이 허망하게 죽음에 내몰리는 ‘나라’가 되지 않겠다는 다짐을 했건만, 집권정부가 두 번이나 바뀌는 동안 한 맺힌 응어리는 풀리지 않고 있다.
‘가만히 있으라’에 순응했던 가난하고 어린 국민은 ‘나라’의 무능함에 침몰됐고 수장되었으며, 분노했던 촛불은 탄핵을 통해 전환의 희망을 보았으나 세상은 달라지지 않았다.
일터에서의 매일매일 죽어나가는 비극은 기득권이 아니라 위기마다 분연히 떨쳐 일어났던 가난하고 힘없는 국민의 몫으로 여전히 거듭되고 있고, 우리는 ‘다시’ 노동의 가치와 ‘안전’이라는 기본권이 제약될 수 있다는 불안을 지우지 못하고 있다.
아프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간절함에 귀를 기울이는 대신 그들을 혐오함으로써 물도 없는 바다로 세상을 더 모질게 하고 있다.
침몰하는 여객선에 갇혀 죽어간 세월호 아이들 ‘공간’의 비극에, 살아남아 있는 자, 살아남아 새로운 전환을 꿈꾸는 기득권은 어떤 ‘의식’을 채워 지배하려 하는가.
꽃들이 만발한 산천초목보다 ‘나라’가 더 가슴 답답한 4월. 늘 그래왔듯이 어쨌든 버텨야 하는 백성에게는 여전히 잔인한 계절.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