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포터와 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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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청타임즈
  • 승인 2007.08.13 2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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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진 이 <청주지방법원 판사>

법원 판사실. 사건 당사자들이 법정 밖에서까지 언성을 높이며 싸우는 소리만이 간간이 들려오던 그곳에 학생들의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려온다.

창문 너머로 보니 법원견학을 온 학생들이다. 이전에도 법원견학프로그램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으나, 올해 들어 청주지방법원에서 '멘토링(mentoring)'이라는 이름으로 법 교육을 실시하고, 법 교육에 대한 적극적인 홍보를 한 까닭인지 부쩍 그 빈도가 높아진 듯하다.

청주지방법원이 올해 3월부터 시작한 '멘토링' 프로그램은 판사 및 법원 일반직 공무원들이 직접 학생들을 찾아가 법 교육을 하도록 하는 것으로써 현재는 청주시 관내 초등학교 6학년생을 그 대상으로 하고 있다.

이에따라 판사와 일반직 공무원이 각 1명씩 1조를 구성하여 청주시 관내 초등학교 54개 중 평균 1∼2개 초등학교를 맡아 학생들의 멘토(mentor, 상담자 또는 조언자)로서 법 교육을 실시하고 있는데, 필자도 올 상반기 초등학교 2곳에서 한 차례씩 법 교육을 실시하였다.

법정에서 사건 당사자들을 상대하는 데만 익숙해진 터라 어린 학생들을 어떻게 대해야할지 막막하기도 하고, 초등학교 6학년생들이 법에 대하여 얼마나 관심이 있을까 하는 우려도 있었으나, 실제 법 교육을 다녀오고보니 예상 외로 법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이 커 다행이다.

법복(法服)을 보고 마법사 해리포터(Harry Potter)가 입는 망토같이 생겼다면서 좋아하는 아이들의 순수한 모습에 절로 웃음이 나고, 아빠에게 들었다며 판사가 돈 많고 힘 센 사람들은 죄를 지어도 다 풀어주는 거 아니냐는 한 아이의 질문에는 더 이상 우리 아이들로부터 저런 질문을 받지 않도록 더 열심히 노력해야겠다고 스스로 다짐도 하게 된다.

당시 상영 중이던 영화 '그놈 목소리'에서 문제가 되었던 살인죄의 15년 공소시효와 관련하여 아이다운 말투이기는 하나 공소시효를 두어야 하는 이유와 그 문제점에 대하여 또박또박 질문을 하고 서로 티격태격 의견을 나누는 모습에는 뿌듯함을 감출 길이 없다.

법 교육이란 법률에 대한 정보를 몇 가지 더 전달하는 데에만 그 목적이 있는 것은 아니다. 법률적 문제에 대하여 논리적인 사고와 토론을 거쳐 합리적인 결론을 도출하고, 그 결론이 상호 합의를 거쳐 도출된 이상 자신의 의견이나 이해와 상충되더라도 이에 승복할 줄 아는 자세를 배움으로써 민주주의 및 법치주의의 기초와 원리를 체계화할 수 있도록 하는데 그 궁극적인 목표를 두어야 한다.

분쟁이 생겼을 때 목청을 높이며 권력자와의 친분을 과시하거나 또는 고소 고발을 남용하는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 많은 것도 결국은 법적인 사고와 논리를 통해서 문제에 접근하고 해결책을 찾는 훈련과 학습이 부족했던 까닭은 아닐까 이러한 점에서 법 교육이란 어릴때부터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법원에서도 법 교육을 위한 나름의 노력을 하고 있으나, 법원의 본질과 기능은 재판에 있는 것이기에 법 교육에 있어서까지 그 주도적 역할을 할 수는 없는 만큼, 가정에서나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올바른 법의식을 심어줄 수 있는 법 교육에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 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앞으로 판사실 창문 너머로 학생들의 왁자지껄한 소리가 더 자주 들려오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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