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는 소리
봄이 오는 소리
  • 박명자 수필가
  • 승인 2022.04.11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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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박명자 수필가
박명자 수필가

 

봄처럼 환한 얼굴로 아이들이 왔다. 날개 깃이 고운 산 까치 한 쌍이 나무 위에서 인사를 건네자, 아이들은 골짜기가 떠나갈 듯한 환호성으로 화답한다. 숲 속의 새싹이 호기심으로 고개를 내밀고 아이들도 같은 마음으로 들여다본다. 둘은 많이도 닮았다. 이 아이들은 숲 체험 학습을 온 유치원생들이다.

오늘은 나무 막대로 만든 액자 틀을 들고 로제트식물을 찾아보기로 했다. 겨울 볕을 골고루 받기 위해 잎이 겹치지 않은 로제트식물은 장미를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냉이, 민들레, 꽃다지, 달맞이꽃, 개망초다. 작년 가을에 싹을 틔워 추운 겨울을 이겨내느라 땅과 비슷한 색의 로제트는 눈여겨보아야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숨어도 두 눈이 반짝이는 아이들 눈을 피해 갈 수는 없다. 땅에 납작하게 붙은 식물은 물론, 양지에서 꽃대를 밀어올려 피운 꽃 위에 액자를 놓고 `찾았다'를 외친다. 키 큰 식물들이 자라기 전에 씨앗을 널리 퍼트리기 위해 서둘러 꽃을 피운 이유를 말해준다. 유전자를 남기고 지키기 위해 모든 동식물은 자신만의 생존전략을 가지고 있다.

음지에 잔설이 남아 있던 삼월 초순이었다.

“크르릉, 크르릉”

볕이 내리쬐는 오후의 골짜기를 흔드는 묘한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주변을 살폈다. 새소리 같기도 하여 나무 위를 올려 봐도 가지를 흔들며 바람이 지나갈 뿐이었다. 소리의 진원지를 찾아 나섰다. 그때 계곡 아래에서 어떤 움직임이 보였다. 뒤이어 둑 아래 고인 물속으로 무언가가 첨벙하고 뛰어들었다. 웅덩이 속, 돌멩이 사이, 모래톱 주변으로 검은색을 띤 산개구리가 수없이 많았다. 드럼 소리와도 같이 울리던 그 소리의 정체는 뜻밖에도 산개구리 울음소리였다. 경칩을 전후해 겨울잠에서 깨어난 부지런한 개구리가 애타게 짝을 찾는 세레나데였다. 저녁 무렵이 되자 짝을 찾은 암놈은 수놈을 등에 태워 사무실 앞을 어기적어기적 걸어 숲으로 들어갔다.

그 많던 개구리는 다 어디에 알을 낳았을까! 어제는 아이들에게 보여줄 개구리 알을 찾아 나섰다. 전 같으면 물웅덩이나 고인 물이 있으면 영락없이 개구리 알이나 도롱뇽 알을 만날 수 있었다. 그런데 올해는 찾기가 어려웠다. 사람들이 즐길 공원을 만들기 위해 계곡 주변으로 공사가 한창이었다. 그곳에 있던 웅덩이나 습지가 모두 사라져 버렸다. 파헤쳐진 길을 따라 한참을 올라갔다. 오밀조밀 어깨를 마주한 다랑논 바닥 고인 물에 개구리 알과 올챙이가 꼬물거렸다. 고였던 물이 말라버리는 바람에 깨어나지 못한 알도 많았다. 아이들에게 보여줄 알과 올챙이를 조금씩 건져 연못 옆 작은 웅덩이에 가져다 놓았다.

숲의 생명을 관찰하며 나는 봄을 닮은 아이들과 자연의 소중함이란 씨앗을 함께 심었다. 무조건 개발을 안 할 수는 없지만, 사람과 자연이 함께 공존하며 생활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가야 한다. 동식물들도 각자의 방법으로 종족 번식을 이어가고 있지 않은가. 모든 생명은 보이지 않는 연결고리로 자연스레 이어져 살아가고 있다. 우리가 함께 심은 작은 씨앗들도 빠르게, 또는 더디게 싹을 틔울 것이다. 계곡에 울려 퍼지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타고 봄이 오는 소리가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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