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물나는 국민 눈높이 타령
신물나는 국민 눈높이 타령
  • 권혁두 기자
  • 승인 2022.04.10 19: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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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권혁두 국장
권혁두 국장

 

한덕수 국무총리 후보자가 퇴직 후 4년 4개월 동안 대형 로펌 `김앤장'의 고문으로 일하며 18억여원을 받았다고 한다. 고위 법관 출신들이 로펌에 고용돼 전관예우 특전을 누리며 수십억원씩 번 사례를 빈번하게 접했기에 놀랄 일은 아니지만 한 후보자는 관료 출신이라 이례적이기는 하다.

인수위 쪽에서는 그가 외국 투자자들에게 국내 기업 환경을 설명하고 투자를 유치하는 업무를 맡았다고 전했다. 현직 관리가 해야 할 일을 퇴직한 공직자가 대신 해주셨다니 고맙기 그지없는 일이지만 의문이 명쾌하게 가시지는 않는다. 로펌이 정기 출근도 하지않는 개인에게 한달에 3500만원을 보수로 제공하며 이런 한가한 일을 맡길 만만한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 후보자는 기자들이 로펌에서 무슨 일을 했느냐고 집요하게 묻자 “그걸 왜 나한테 묻느냐”고 짜증을 냈다고 한다. 자신이 일한 로펌에 물어보란 얘기로 들린다. 알려진대로 국익에도 도움을 주는 일을 했다면 좀 더 당당하고 분명하게 대답했어야 한다. 민주당이 인사청문회에서 이 부분을 집중적으로 따지겠다고 하니 사실관계가 얼마나 밝혀질 지 두고 볼 일이다.

18억원의 석연찮은 보수보다 심각한 문제는 따로 있다. 한 후보자는 15년 전인 2007년 노무현 정부에서도 총리를 역임한 바 있다. 당시에도 `김앤장'에서 8개월 동안 1억5000만원의 고문료를 받은 전력이 문제가 돼 청문회에서 야당의 공격을 받았다. 그때는 국민의힘의 전신인 한나라당이 한 후보자를 추궁했고 여당인 열린우리당(지금의 민주당)이 엄호에 나섰다. 이번에는 양당의 입장이 바뀌었다. 15년전 1억5000만원을 공격했던 국민의힘은 이번에는 18억원을 방어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당시 방어막을 구축했던 민주당은 이번엔 공격으로 전환하게 됐다.

국민의힘의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한 후보자에게 국민 눈높이에 맞지않는 흠집이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난국을 타개할 적임자'라고 강조하고 있다. 내로남불의 또 다른 버전이 등장한 셈이다. 저쪽 편일때 받은 로펌 수입은 심각한 결격사유가 되지만 우리 편이 됐을 때는 문제될 게 없다는 기만적 논리 말이다. 민주당도 마찬가지다. 15년 전에는 문제될 게 없다고 강변했던 똑같은 사안에 대해 이번에는 철저히 따지겠다고 벼르고 있으니 말이다. 청문회에 앞서 두 당은 같은 인물, 같은 의혹에 대한 입장이 180도 바뀐 사유를 명백하게 밝혀야 한다.

인수위는 난국을 헤쳐나갈 경륜과 지혜에서 한 후보자를 능가할 인물이 없다고 했다. 실제 한 후보자는 역대 공직자 가운데 손가락에 꼽힐 정도로 두터운 이력의 소유자다. 4개 정권을 누비며 관세청장, 통상산업부차관, 경제수석, 국무조정실장, 재경부장관(부총리), 주미대사에 총리까지 섭렵했다. 그러나 그는 15년 전 공직을 떠났던 인물이다. 그의 재등장은 인수위가 내건 변화와 혁신의 기치에 부합한다고 보기 어렵다. 인수위 스스로 인정했듯 그는 공직에서 물러나 있던 동안 `국민 눈높이를 맞추지 못한' 큼지막한 혹까지 하나 만들어 달고 나타났다.

대한민국은 졸지에 인재를 찾아 15년을 거슬러 올라간 나라가 됐다. 그동안 한 후보자를 대신할 만한 총리감 하나 키우지 못했느냐고 따지고 싶은 국민은 그가 로펌에서 받은 수상한 보수에 대해서는 눈높이를 낮춰달라는 뻔뻔한 요구까지 받고 있다. 새 정부의 인사에서는 `국민의 눈높이를 맞추지 못해 송구하다'는 말을 더 이상 듣지않을 것으로 기대했으나 총리 인선부터 난망이다. 국민 눈높이를 맞추지 못했다면 송구하다며 밀어붙일 게 아니라 바로잡아야 하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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