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까시래기
손까시래기
  • 임현택 수필가(괴산문인협회 지부장)
  • 승인 2022.04.06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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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임현택 수필가(괴산문인협회 지부장)
임현택 수필가(괴산문인협회 지부장)

 

봄꽃이 휘날리는 나날, 봄기운이 더해가면서 달 뜬 마음은 꽃바람에 얹어 유랑한다. 봄바람은 처녀 바람이라 했듯 천 리를 간다는 꽃향기에 취한 듯 봄나들이에 열심이었다. 허나, 꽃바람 때문인지 어느 날부턴가 거칠어진 손과 매끄럽지 못한 손톱, 게다가 손거스러미까지 일어나기 시작했다. 한참 손을 바라보고 있자니 앙탈 부리듯 가슴에 찬바람이 일면서 겨울 한복판에 서 있는 듯 처연하다.

생전 할머닌 `눈칫밥을 먹으면 손까시래기(거스러미)가 일어나는 겨'하시면 혀를 차시곤 하셨는데 뭔 일인지 심란스럽다. 내 나이 두 번째 서른이 목전인데 눈치 볼일이 뭐가 있을까. 그럼에도 요즘 허옇게 일어난 손거스러미가 자꾸만 눈에 밟혀 손끝을 힐끔거린다. 푸석푸석 윤기 없는 손톱까지도 신경이 거슬려 짜증스럽고 예민해진다.

여자의 나이는 손과 목에서 나타난다 했거늘 쭈글쭈글해지고 마디가 두툼해지는 손가락, 거기에 손거스러미까지 웬 말이던가. 가냘프고 고운 섬섬옥수 같은 손을 원하는 건 아니다. 상남자 같은 아줌마의 손보다는 보호받고 싶은 여자의 손을 소원했는데 욕심일까.

우리 몸의 축소판이 손이라 했다. 손만 봐도 나이는 물론 건강상태를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는 사실. 특히 손톱은 모양이나 색에 따라 몸에 어떤 이상이 있는지를 쉽게 파악할 수 있다고 한방에서는 말한다. 나처럼 손거스러미가 나고 세로줄이 생긴 손톱은 노화로 인한 영양 불균형이란다. 노화, 당연한 일이다. 그럼에도 노화라는 말이 왜 이리도 언짢게 들리는지 외면하고 부정하고 싶다. 현실 부정의 충동이 움찔거리는 내 모습에 꼰대의 기질이 엿보여 겸연쩍다. 노화가 뭣이라고 인정보다는 부정하며 안달하는 나, 원치 않지만 꼰대 대열에 합류한 내가 오늘 유달리 애처롭고 애잔하다.

생전 어머니의 손은 삶의 무게를 걷어 올린 여자의 일생의 손이었다. 검으직직하고 골 깊은 주름, 거칠고 투박한 손마디엔 살이 박혀 굵직굵직하게 변형된 기형의 손가락. 갈색으로 물든 손톱, 툭툭 튀어나온 손등의 심줄에 손거스러미까지 기형으로 휘어진 굵은 손가락은 어여쁘지도 않았다. 거기에 굵은 손마디에 가느다란 실반지는 윤기를 잃은 체 어설프게 꽉 끼어 있었다.

그런 실반지는 나를 아프게 했었다. 그럼에도 투박하다고 못났다고 한 번도 남들 앞에 손을 감춘 적이 없으셨던 어머니셨다. 외려 딸내미들은 거칠어진 어머니의 손을 보고 가엽고 애처롭다 여기기보다는 가꾸지 않는다며 타박하면서 아픈 상처를 후벼 파곤 했다.

수십 년 강산이 변한 세월, 어머니의 나이가 되어보니 생전 어머니의 손과 내 손이 서로 얼 비추며 측은하기보다는 가여운 연민의 가시가 되어 아프게 찔러댄다. 거칠지만 따스했던 어머니 손, 더 이상 두 손을 맞잡을 순 없는 이 시간 한참을 쭈그리고 앉아 이런저런 상념 속에 빠져들며 고개를 떨군다. 무릎 위에 나란히 올려놓은 손, 과거를 되새김하듯 연신 꼼지락거린다. 맑고 밝은 햇살이 손가락 사이로 파고든다. 생각이 바뀌면 운명이 바뀐다 했듯 조금 못나면 어떠랴 내 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이젠 남 앞에 내세울 만큼 정대해졌다.

깊은 주름마다 새겨진 삶의 흔적들, 어여쁜 손은 아니지만 잔주름이 촘촘하게 잇대어가는 손은 아름다운 삶이 머무는 손이다. 긴 세월 동고동락하며 삶을 동행하는 투박한 내 손, 참으로 따습게 안기는 오늘이다. 양팔을 꼭 껴안으며 쓰담쓰담 가만가만 나를 위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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