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으로 돌아간다는 것
일상으로 돌아간다는 것
  •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 승인 2022.04.05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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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단상
일상으로 돌아간다는 것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봄밤의 별빛은 아무래도 화사하지 않다. 찬바람이 휘몰아치는 쨍한 하늘과는 달리 동트기 전 봄날의 새벽 별빛을 찾기는 겨울 하늘보다 어렵다.
봄이 오면 머나먼 별과 지구 사이에 아지랑이며, 풀과 나무 등 온갖 생명들의 움트는 기운이 채워지기 때문이라고 세상을 읽는다. 바람도 서럽도록 차가운 기운도 직선으로 내리 꽂히는 겨울과 달리 봄날에는 삼라만상이 곡선이다.
꽃이 핀다는 것은 단지 한 몸에서 하나씩 진행되는 순서가 아니다.  흐릿하게 모습을 숨긴 별빛과, 땅속 깊은 곳부터 빈틈없는 세상의 공기에 이르기까지 모든 습기를 한꺼번에 끌어 모은 간절함이다. 그러니 찬란했던 별빛도 숙연해지며 봄꽃들에게 기꺼이 빛나는 시간을 내어준 것이리라. 
아직도 불안한 기운을 말끔하게 씻지 못하고는 있다. 그럼에도 하루를 온통 채우는 밤 12시까지 10명의 사람을 만날 수 있게 될 만큼 우리는 일상으로 돌아갈 채비를 하고 있다. 얼마 후면 바깥에서는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지 않아도 될지를 저울질할 수 있을 만큼 숨 고르기를 하고 있으니, 흐드러지게 만발한 봄꽃 소식이 아니어도 충분히 반갑다.
세상의 모든 질병은 시작은 있으되 결코 끝은 없다. 2년이 넘게 우리를 가둬 온 코로나19 역시 마찬가지다. 확진자가 점차 줄어들다가 어느 선에 이르면 숫자로 계량하지 않고 통계도 하지 않으며, 알거나 알려주는 일도 하지 않을 것이다. 
팬데믹(pandemic. 유행병)이라는 생경한 표현에 짓눌려 살아오던 끝에 엔데믹(endemic.풍토병)이라는 낯선 단어를 떨쳐버리지 못하고 살아가야 한다. 감기처럼.
따지고 보면 우리는 오래 동안 ‘일상’이라는 낱말을 굳이 언명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살아왔다. 
그러므로 우리가 ‘일상’으로 온전히 돌아가기 전에 가장 의미를 두어야 할 일은 평범했던 그 ‘일상’이 우리에게 얼마나 소중했던 나날이었음을 깨닫는 일이다.
의료진과 방역당국, 그리고 자원봉사자들의 눈부신 헌신에 대한 찬사 또한 ‘일상’이 회복된다고 해서 결코 잊어서는 안 되는 일이다.
시민 개개인의 소중한 정보를 군말 없이 제공하고, 방역수칙을 철저히 지키며 살았던 제한과 통제의 시간이 ‘나’를 위함이 아니라 ‘우리’를 향한 인내였다는 점은 ‘일상’에서 더욱 키워야 할 공동체의 덕목일 것이다.
불행한 나날이었으나 코로나19를 통해 건강하고 안전한 사회를 원하는 희망이 얼마나 소중하고 간절한 것인지를 깨닫게 되었다는 점은 ‘일상’에서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어려운 이웃을 위해 기꺼이 임대료를 깎아주거나 면제 또는 유예해 준 착한 집주인이 있었다는 기억은 이미 희미하다.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고난이 길어지고, 따라서 경제활동을 제한하는 강제 규정이 작동한 탓도 있을 것이다. 임대인은 임대인대로 임차인은 또 그들 나름의 위험이 있으니 개인적으로 감당하기는 곤란한 지경이었음을 모르는 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착한 건물주’를 스스로 자청하며 세상에 ‘함께’라는 생각이 깊어지게 만든 선한 영향력을 기억하고 오래 칭찬할 수 있는 ‘일상’이 되어야 한다. 이들을 찾아내 시민상을 주는 일은 사람들의 심성을 더 착하게 키우고 넓히는 귀감이 될 것이다.
무엇보다 우리가 다시 찾을 ‘일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오로지 인간만을 위하고 인간으로만 통하는 탐욕을 버리고 자연을 소중하게 여기는 ‘일상’의 경계를 지키는 일이다. 사람만이 아니라 지구에서 함께 호흡하는 수많은 동물과 모든 식물들의 생명을 존중하는 공생의 ‘일상’으로 향하는 더 원초적인 회복으로의 전환이 절실하고 시급한 일임을 깨달아야 한다.
아무리 찾아보기 어려운 봄밤이라도 별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아지랑이에, 찬란한 꽃의 아름다움을 위해 빛나는 자리를 양보한 것.
우리의 ‘일상’도 그런 의미로 채워야 할, 세상을 깊게 보는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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