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선화
수선화
  • 김태봉 서원대 중국어과 교수
  • 승인 2022.04.04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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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봉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서원대 중국어과 교수
김태봉 서원대 중국어과 교수

 

동아시아 일원과 지중해에 서식하는 꽃이 있다.

꽃말이 자존심인 이 꽃은 봄꽃 중에서도 단연 눈에 띄는 자태를 뽐내는 수선화이다.

그러나 꽃말과는 달리 예전 묵객들의 사랑을 받진 못했었다.

이런 가운데 조선(朝鮮)의 시인 신위(申緯)는 특이하게도 봄꽃 중에서 매화가 아닌 수선화를 시의 주인공으로 삼고 있다.


수선화(水仙花)

無賴梅花擫笛催(무뢰매화엽적최) 얄미운 매화꽃이 피리 잡으라 재촉하더니
玉英顚倒點靑苔(옥영전도점청태) 옥같은 꽃봉오리 푸른 이끼에 떨어지네
東風吹縐水波綠(동풍취추수파록) 봄바람 불어와 물결에 푸른 주름 잡히는데
含睇美人來不來(함제미인래불래) 눈길 주던 그 님은 오시는지 안 오시는지?

이 시에는 수선화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나타나지 않는다. 시인은 시의 주인공인 수선화는 복선으로 깔아 놓고 전혀 무관한 것처럼 보이는 매화를 먼저 표면에 드러낸다. 시인에게 매화는 애증의 대상이다. 사랑스럽지만 짐짓 속내를 감추고 얄밉다고 말한다 그런 매화꽃은 자기 곁에 와서 피리 불며 즐길 것을 재촉하였지만 시인은 모르는 체하였다.

매화가 지고 나서야 시인은 속내를 말한다. 얄미운 매화가 옥 같은 꽃으로 바뀐 것이다. 푸른 이끼 위에 떨어진 매화 꽃잎은 어여쁘기가 그지 없다. 매화가 지고 나서 봄은 더욱 깊어 간다. 동풍이 불어 물결이 이는데, 물결의 주름이 한층 푸르러 진 것이다.

얄미웠던 매화는 지고 없는데, 시인은 그것을 그리워하지 않는다. 마음속으로 기다리는 꽃이 있기 때문이다. 오기만 하면 바로 눈길을 줄 꽃은 다름 아닌 수선화이다. 시의 끝에 가서야 주인공을 극적으로 등장시켜 궁금증을 극대화시키는 시인의 솜씨가 독특하면서도 뛰어나다.

수선화는 매화만큼 봄을 대표하는 것으로 인식되지 않지만, 청초하기로 치면 이만한 봄꽃을 찾기 어렵다. 산수유 매화 개나리 진달래 벚꽃까지 나무에 달린 꽃들이 고개를 높이 들고 농염한 자태를 드러낸다면 수선화는 수줍게 물가에서 담장 밑에서 또 마당 한 귀퉁이에 고개마저 숙이고 있다. 이 겸손한 꽃을 보면서 들뜬 봄 기분을 가라앉히는 것 또한 봄을 즐기는 한 방편일 것이다.

/서원대 중국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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