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봄 되도록
봄이 봄 되도록
  • 배경은 단재기념사업회 사무국장
  • 승인 2022.04.03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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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가는대로 붓 가는대로
배경은 단재기념사업회 사무국장
배경은 단재기념사업회 사무국장

 

봄이 왔다, 드디어. 요즘처럼 날씨가 차근차근 따뜻해지고 매일 달라지는 바람의 냄새를 맡고 있노라면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계절의 여신 `호라이'가 저절로 생각난다. 율법의 여신 테미스와 제우스 사이에서 태어난 세 자매로 정의의 여신 디케와 질서의 여신 에우노미아, 그리고 평화의 여신 에이레네를 말한다. 계절의 여신 호라이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중앙공원 회양목에 꽃이 피려고 한다. 곧 은근한 향으로 벌을 불러들여 질펀해질 것이다. 천년 가까이 산 은행나무를 중심으로 산수유 꽃은 오종종하게 피어 행인의 눈을 붙잡고 윷가락 던지는 노인의 옷도 가벼워졌다. 그리고 날씨가 좋아지면 자연히 미세먼지 걱정이 앞서게 된다. 그러거나 말거나 한낮엔 기어이 커피를 들고 공원에 나가 광합성 하기를 즐긴다.

다시 봄은 되었는데 그만큼 생태계는 안 좋아지고 있음을 직감한다. 야생동물이 사는 동네를 가로지르는 도로가 코끼리 다리처럼 누워있다. 차를 타고 가다 보면 뚝 잘려나간 산 사이로 아파트가 세워지고 있는 누더기 같은 모습은 비참해 보이기도 한다. 저렇게까지 해서 사람만을 위한 집을 꼭 지어야 할까, 늘 의문이다. 저기 살던 야생동물은 어디로 가나, 갈 곳은 있나, 생소해진 길 피해 다니다 로드킬 당하는 건 아닌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은 기분 좋은 봄날을 우울하게 만들기 일쑤다. 이런 생각은 나 혼자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니란 생각이 든 책, 『지혜로운 멧돼지가 되기 위한 지침서』가 있었다.

집을 잃어버린 모든 멧돼지에게 이 책을 바친다는 권정민 작가는 멧돼지 가족을 응원하고 싶은 마음에 책을 지었다고 한다. 인간의 이기심으로 파헤쳐지는 숲에서 그럼에도 살아남아 이왕이면 행복해졌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담았다고 한다. 생태를 사랑하고 영혼이 맑은 작가라는 것을 대번에 알아보았다. 자, 이제 지혜로운 멧돼지 지침을 훔쳐봐야겠지? 먼저 `하루아침에 집이 없어져도 당황하지 말고 새집을 찾아 나설 것' 생각만으로도 포식자 인간이 어떻게 자연과 야생동물을 다루는지 짐작할 수 있다. (다른 몇 가지도 있으니 직접 읽어보시길) 인간의 포크레인에 집을 잃은 새끼 멧돼지 세 마리와 어미가 새집을 찾아 벌이는 소동은 졸지에 집을 잃은 철거민을 생각나게도 한다. 갈 곳 없는 황망한 발자국은 방향을 잃어버린다. 하지만 지구별이 생기고 지금껏 더 큰 재난에도 살아남은 호모 종과 우등한 세포의 동물은 여기까지 왔다.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인간은 거침없이 자연을 자신의 전유물처럼 다루고 야생동물은 인간의 집 거실 한복판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더이상 집을 뺏기고 싶지 않은 멧돼지 가족의 결연한 눈빛이 그림책을 덮고도 마음에 남는다. 동물에게나 인간에나 일상의 터전은 중요함을 새삼 깨닫게 한다.

괴테는 자연과 인간을 포함하는 지상의 모든 것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생태주의적 관점을 일관되게 견지해온 작가다. 그는 자연을 근본적으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자연현상을 그대로 관찰해야 한다고 여겼다. 자연을 경험하고 자연의 비밀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자연의 독백을 해독하는 것”이 자연을 인식하고 이해하는 방법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난 몇 년 동안 전염병의 창궐로 많은 생활에 제약을 받았다. 올봄부터라도 자연을 그저 있는 그대로 내버려 두면 좋겠다. 내버려 두며 자연을 경험하고 만끽하자. 인간을 위한 개발이 자연의 관점에서는 침략이다. 동물이 지나다니는 길과 주거권 만큼은 지켜주자 인간적으로. 다시 온 봄의 여신께 감사하며 느끼고 명랑한 햇살을 즐기면 된다. 조물주 위에 건물주가 있다는 세상에 너무 낭만적인 생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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