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정치 일깨운 박세복 군수
중앙정치 일깨운 박세복 군수
  • 권혁두 기자
  • 승인 2022.04.03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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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권혁두 국장
권혁두 국장

 

목불인견(目不忍見).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치판에서 벌어지는 광경을 바라보는 유권자들의 심정은 이 네 글자로 압축될 것 같다.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민망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는 얘기다. 지난 대선 결과에서 나타난 근소한 표차는 유권자가 민주당과 국민의힘 양당 모두에 패배를 선고한 것으로 해석해야 마땅하다.

민주당은 촛불혁명이 만들어준 강력한 발판을 스스로 무너트리고 하루아침에 정권을 넘겨줬다. 오류와 자충수를 거듭하며 상대 당의 무대에 오를 주연배우를 키우는 데 골몰하다가 몰락했다. 시민혁명이 부여한 소명을 망각하고 배신한 과오에 대해 석고대죄를 해도 모자랄 정당이다.

국민의힘도 승리를 누릴 자격이 없다. 실패한 정권이 응분의 대가를 치르고 따끔한 교훈을 얻도록 하라는 압도적 여론을 온전히 수용하는 데 실패했다. 민주당에는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라는 자위적 구호가 나부낀다. 패자에게 패배를 각인시키지 못한 초라한 승리였다. 수권 정당으로서 믿음을 얻지못한 선거 결과를 엄중히 직시하고 쇄신의 각오를 가다듬어야 할 정당이다.

그러나 두 정당 모두에서 성찰하고 자숙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지방선거라는 밥상에 앞다퉈 숟가락을 얹으려는 낯뜨거운 경쟁만 펼쳐지고 있다. 선거를 진두지휘했거나 후보 경선에 나섰다가 패배한 중량급 인사들이 일말의 망설임 없이 탐욕의 대열에 뛰어들어 선두에 섰다. 새로운 얼굴은 눈을 씻고 살펴도 보이지 않는다. 민주당의 전 대표는 지난 대선을 총괄 지휘했던 패장으로 결과에 책임을 지고 자숙해야 한다는 당 안팍의 반발에도 아랑곳 없이 서울시장 출마를 강행하고 있다. 국민의힘에선 지난 대선에 출마했고 이번 경선에서 윤석열 당선인과 격돌했던 간판급 인물이 대구시장 출마를 밝히고는 공천 룰을 놓고 당과 티격태격 하는 옹색한 모습을 보였다.

양당 대선 주자가 국회를 거치지 않은 정치 초년생과 지방 정치인으로 결정된 그 순간 민심에 외면당한 자신들의 현주소를 읽었어야 할 사람들이다. 망둥이가 뛰니 꼴뚜기들이 가만히 있을리 없다. 호시탐탐 틈새를 노리던 흘러간 인물들이 컴백을 선언하거나 준비하고 있다. 느닷없이 출현한 `충북의 딸'은 그나마 유권자들에게 웃음이라도 안겼다. 후보 시절 정치 다변화를 주창하며 다당제를 찬양했던 작은 정당 대표들은 선거가 끝나자마자 거대정당에 들어가 입신을 도모하는 기회주의자로 돌변했다.

한 시골 단체장의 최근 행보가 몰염치, 몰양심, 몰가치에 빠져 허우적대는 중앙정치에 일침을 날리고 있다. 3선 도전이 유력시 되던 박세복 영동군수가 그제 불출마를 선언했다. 무난한 당선이 예견됐던 터라 지역에선 반향이 컸고 그 이유에 관심이 쏠렸다. 그는 약속과 양보의 가치 앞에서 욕심을 버렸다고 했다. 3선을 노리는 상대 후보에게 3선의 부당성을 제기했던 과거, 두 번만 하겠다며 지지자들을 규합했던 과거를 부정할 수 없었다고 했다.

한 번 더 군수를 맡아 그동안 벌려놓은 사업들을 매듭짓고 싶은 욕구와 공적으로 밝힌 소신과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신의 사이에서 오래 고심하다가 후자를 택했다고 했다. 후진에게 기회를 양보하는 건전한 선례를 만들고 싶었다고도 했다. 도전장을 낸 후배들의 패기와 역량을 인정하고 나니 나 아니면 안된다는 오만을 떨치게 되더라고 했다.

지역 유권자들은 그의 아름다운 퇴장에 박수를 보내고 있다. 박 군수의 결단이 중앙 정치인들에게도 울림을 줘 물러날 때를 알라는 고언으로 전달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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