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를 그리다
자유를 그리다
  • 이재정 수필가
  • 승인 2022.03.30 17:4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타임즈 포럼
이재정 수필가
이재정 수필가

 

내 집이 감옥이 될 줄이야. 일주일을 꼬박 갇혔다. 코로나가 숙주로 내 몸을 침범하던 날, 몸이 으슬으슬 추웠다. 그래도 몸살이려니 대수롭지 않다가도 불안했다. 이어 점점 열이 올랐다. 동료인 두 명이 코로나 확진을 전해온 터였다. 우체국은 문을 닫고 다른 곳으로 출근하라는 지시가 내려진 상황이었다. 혹시나 해를 끼칠까 걱정이 앞서 자가진단을 했다.

아니나 다를까. 진단키트가 선명하게 두 줄이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서둘러 찾아간 보건소에는 이미 줄이 길게 늘어서 있다. 한 시간을 기다려 pcr 검사를 마쳤다. 이후로는 외출금지다. 다음날까지 결과를 기다리는 내내 초조했다. 집에 틀어박혀 소식이 오기까지 안절부절 못하는 나에게 그이의 일침이 날아왔다. 보는 옆 사람이 더 불안하다는 것이다.

다음날 11시가 되어서야 애를 태우던 문자가 온다. 양성으로 확진되어 재택치료를 하라고 되어있다. 순간 아무 생각이 나질 않는다. 그저 멍하다. 이 시간부터 철저히 격리로 들어가야 한다. 구속이라는 단어가 붙자 아파트가 철창처럼 느껴져 갑갑증에 숨이 막힌다. 누릴 때는 몰랐다. 자유가 이처럼 소중하다는 것을. 그 사람이 있을 때는 몰랐다가 떠나고 나서야 알게 되는 빈자리처럼 말이다.

갑자기 멈추어진 일상이 나에겐 쉼표가 아닌 구속이다. 얼른 지나가기만을 기다리고 넋을 놓고 있는 사람에게 시간은 더디게 갈 수밖에 없는 법이다. 밤도 길다. 달콤한 나비잠을 깨보면 한 칸도 가 있지 않은 시침의 토막잠으로 바꿔 놓았다. 자유를 향한 탈출을 감행하는 빠삐용처럼 철창 없는 감옥으로부터의 탈옥만을 꿈꾼다. 시간은 늘어나 느슨해진 고무줄처럼 자꾸만 늘어진다.

무얼 해야 하는지, 아무것도 손에 잡히질 않는다. 격리되어있는 동안 책을 몇 권 읽었다는 이가 있다. 또 음악을 들었다는 이도 있다. 다들 나름대로 시간을 잘 보내건만 나는 허송세월을 보내고 있다. 책을 보아도 들어오지 않고 좋아하던 음악도 시끄러운 소음이 된다. 휴일에 혼자 편히 즐기던 시간이 아니다. 웬일인지 마음까지도 포승줄로 꽁꽁 옭아매고 있다.

사육사가 동물원의 침팬지에게 카드로 글자를 가르쳤다는 것이다. 얼마간 그것을 익힌 후에 제일 처음으로 표현한 글자가 “나에게 자유를 달라”는 말이었다고 한다. 이렇듯 동물도 자유를 갈망하거늘 사람이야 오죽하랴. 나의 하루하루는 자유를 외치는 하소였다.

“나에게 자유를 달라, 그렇지 않으면 죽음을 달라”라는 구절은 유명하다. 이 구호는 인류 자유투쟁사의 피맺힌 절규다. 미국의 독립전쟁 당시 독립운동가였던 패트릭 헨리가 17775년 3월 28일 버지니아주 대표자회의, 하원에서 행한 명연설로 꼽힌다. 그는 자유를 위해 싸우는 수밖에 없다고 열변을 토했다. 영국의 중상주의에 대항하여 북아메리카의 식민지들이 봉기하려던 때 버지니아도 태도를 결정해야 하는 순간에 했던 말이다.

그이는 끝까지 전염이 되지 않아 말로는 독종이라고 놀려댔지만 참 다행이다. 하루는 오한으로 또 하루는 열로 고생을 하고 이틀을 기침으로 밤을 새웠다. 내내 목에 이물감이 느껴지면서 쇳내가 났다. 몹시 불쾌한 느낌이다. 음식을 먹어도 맛을 모르겠다. 기운이 빠지면서 늘어진 해파리 꼴이었다. 나로 하여 이런 고통을 그이도 겪게 될까봐 걱정을 했다. 격리 해제되는 날도 진단키트는 한 줄이다. 안도의 숨을 내쉰다.

드디어 일요일 밤 12시. 자유다. 이제 나는 자유인이다. 나도 모르게 환호가 터지고 두 손이 번쩍 올라간다. 이 밤에 바깥공기가 그리워 밖으로 나가자 바람이 나에게로 쏜살같이 달려든다. 찬 공기가 싫지만은 않다. 처져있던 세포들이 쭈뼛쭈뼛 일어서는 이 긴장감이 좋다. 살 것 같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