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록색 코트
청록색 코트
  • 이은일 수필가
  • 승인 2022.03.29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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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이은일 수필가
이은일 수필가

 

친척 집 혼사 참석차 서울에 왔다. 결혼식장이 마침 작은딸이 사는 오피스텔과 5분 거리에 있어 예식이 끝나고 바로 딸네 집으로 갔다. 큰딸은 이미 와 있었다. 서울 온 김에 곧 있을 작은딸 상견례에 입을 옷을 같이 사러 가기로 삼 모녀 약속을 미리 했던 차다.

큰맘 먹고 백화점으로 갔다. 몇 군데 매장을 돌며 평소에는 잘 입지 않던 원피스 종류로 여러 벌 입어 본다. 더블 단추로 앞 여밈이 되어 있는 멋쟁이 스타일과 얌전한 디자인의 니트 정장도 맘에 들었는데 평상시에도 잘 입을 것 같은 편한 소재의 원피스로 결정했다. 그런데 아무래도 가격이 만만치 않다. 이렇게 저렇게 할인 들어가고 백화점 회원카드 적용하더라도 너무 비싼 것 같다.

작은딸이 사주는 거라서 눈 딱 감고 그냥 받을까도 했지만 백만원에 육박하는 옷을 입기엔 내 배포가 간장 종지인 걸 어쩌랴. 나는 스타일과 브랜드를 알아놨으니 다른 날 할인매장에도 가보는 것으로 일단락지었다.

저녁을 먹고 작은딸 집으로 돌아와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수다 삼매경에 든다. 솔직히 삼 모녀 모인 목적이 이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이런저런 추억들을 소환해 한참을 이야기하다 청록색 코트 얘기가 나왔다. 심장 한쪽이 찌르르 옥죄는 느낌이다. 벌써 15년도 더 지나간 일인데도 그때 일만 떠오르면 어제였던 듯 마음이 아프다. 큰딸이 초등학생 때 한창 아나바다(아껴 쓰기, 나눠 쓰기, 바꿔 쓰기, 다시 쓰기) 운동이 유행했었다. 가끔 학교에서 `바자회'라고 해서 안 쓰는 학용품이나 책, 장난감, 작아진 옷 등을 기부받아 학부모회 주간으로 운동장에 알뜰장터가 열리곤 했었다.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온 큰딸이 무슨 큰 보따리를 내 앞에 놓았다. 뭐냐고 하니까 엄마 옷이란다. 풀어보니 짙은 청록색의 겨울 코트였다. 앞부분에 뭔가가 치렁치렁 달려있고 크고 길고 무겁고 투박한 모직 코트였다.

그 옷을 판 아주머니 말이 너희 엄마는 키가 크니까 잘 어울릴 거라면서 사다 드리면 엄마가 무척 기뻐하실 거라고 했단다. 하지만 디자인도 크기도 내 스타일은 아니었다. 더운데 아이스크림이나 사 먹을 것이지 입어 보라는 아이 말에 겨울에 입겠다고 얼버무리며 한옆으로 밀어 놔두었었다.

큰딸이 좀 커서 언젠가 그날의 속상했던 기억을 얘기한 적이 있었다. 그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가슴에서 뭔가가 툭 끊어지는 느낌이 들었었다. 엄마라는 사람이 어떻게 아이 마음을 그렇게나 몰라줄 수 있는 걸까. 그때 큰딸은 500원을 손에 들고 먹고 싶은 거, 쓰고 싶은 거 꾹 참고 엄마를 위해 코트를 샀을 거였다. 집으로 돌아오는 동안 엄마를 기쁘게 해드리려는 생각에 땀을 뻘뻘 흘리며 달려왔을 텐데. 나의 무신경함에 가슴이 미어졌고 오래도록 후회하고 또 후회했었다.

그냥 아이 앞에서 한번 입어 볼걸. 활짝 웃으며 패션쇼 하듯 모델 걸음으로 거실을 왔다 갔다 해 줄걸. 그게 뭐 그리 어려운 일이었다고. 앞으로도 청록색 코트는 두고두고 후회스러운 기억으로 남을 것 같다.

얼마 전에 지인이 공유해 준 글에서, 한 잡지기자의 인터뷰에 이기호 소설가가 부모가 된 뒤 달라진 점은 `아이를 키우는 일은 기쁜 건 더 기뻐지고 슬픈 건 더 슬퍼지는 일이다'고 답했다는 내용을 본 적이 있다. 나는 여기에 하나를 더 보태고 싶다. `후회는 더 후회되는 것'이라고. 그리고 이런 부모 마음의 뒷면은 `사랑'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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