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정숲을 걸으며
용정숲을 걸으며
  • 심억수 시인
  • 승인 2022.03.27 17:1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세상엿보기
심억수 시인
심억수 시인

 

3월의 푸른 햇살이 용정 산림공원에 가득하다. 초록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는 그냥 용정 숲이 좋아 웃는다. 숲길의 여린 새싹도 덩달아 미소 짓는다. 푸른 잎들이 햇빛 조명에 찬란한 초록 공연을 펼친다. 인간이 표현할 수 없는 오묘한 맑은 빛이 심장을 흔든다. 용정 숲 초록 햇살의 요술에 세월에 무디어진 늙은 마음이 청년의 심장으로 부푼다.

용정 산림공원은 청주 김수녕 양궁장 맞은편에 자리한 국유림이다. 남녀노소 누구나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공원 입구에 안내 지도가 설치되어 있다.

숲 속 쉼터, 낙엽송림, 무궁화동산, 유아 숲 체험원 등 탐방로가 표시되어 있다. 그 옆 커다란 표지석이 용정 산림공원을 찾아온 탐방객을 반긴다. 숲 속 쉼터 앞 노산 이은상 시인의 “나무의 마음”이라는 시비가 있다. 나무도 사람처럼 마음이 있다는 시 귀가 나무의 소중함과 자연보호의 중요성을 일깨운다.

무릎 연골이 약해 내리막 걷기에 불편을 느끼는 아내를 위해 왼쪽 오르막 능선을 택했다. 가파른 탐방로를 오르며 나의 인생길을 돌아본다.

칠십여 년 많은 세월을 걸었다. 내 삶의 봄날을 꿈과 희망으로 보내야 했다. 그러나 뚜렷한 목표의식 없이 보낸 아쉬움이 헐떡인다. 걸음을 멈추었다. 잠시 숨을 고르며 올라온 길을 본다.

먼저 오른 아내의 재촉에 잰걸음으로 오르니 정상이다. 땀 흘리며 올라온 오르막처럼 뜨거운 열정으로 내 인생의 여름날을 보냈다. 앞만 보고 숨 가쁘게 달려왔다. 여유 없는 삶 속에서 생각하지도 보이지도 않았던 내 삶의 후회들이 내리막 숲길을 향해 앞장선다. 정상에서 능선 따라 내려오니 갈림길이다. 무궁화동산과 산림공원 입구의 이정표가 서 있다. 내 젊은 날 갈림길에서 명예와 물욕을 이기지 못해 망설이고 방황했다. 그때는 험난한 나의 길이 내 인생의 치욕이라고 생각했다. 이제 돌아보니 그 또한 아름다운 도전이고 삶의 여정이었다. 내 삶의 가을 즈음이 된 이제야 가쁜 숨을 몰아치며 걸어온 나의 길이 아름답다는 걸 알았다.

봄을 시샘하는 바람마저 싱그럽다. 숲의 맑은 공기를 마시며 걷다 보니 탄생목 표지판이 보인다. 2011년 식목일을 맞아 2세 미만의 어린이가 있는 50세대의 가족이 아이의 탄생을 기념하기 위해 나무를 심었단다. 내 아이들의 탄생목은 없지만, 아내와 자식들의 어릴 적 이야기를 나누었다. 한동안 행복한 추억에 잠겼다. 인생을 산다는 것은 끝없는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이제는 자식들도 결혼하여 건강하고 행복한 가정을 꾸렸다. 각자 자신들만의 이야기를 만들어 가고 있다. 아내는 세월이 참 빠르다며 나의 얼굴을 빤히 본다. 그런 아내도 세월의 흔적은 지울 수가 없는지 곱던 모습은 찾을 수 없다. 탄생목 숲에서 공원 입구 표지석에 새겨진 “숲에 우리의 미래와 희망이 있다”는 글귀가 떠올라 의미가 있었다.

탄생목 조성지를 뒤로하고 발길을 옮기니 숲 속 헬스장이 있다. 헬스장을 지나자 세월을 헤집고 자란 송림이 울창하다. 도심에서 여유롭게 자연을 만끽하고 숲의 맑은 공기를 마시며 걸을 수 있어 행복이다. 용정 숲 초록 햇살에 마음이 젊어졌다. 하산 길 아내와 맞잡은 손이 촉촉하다. 아내와 40여 년을 함께 했다. 이제는 아무런 욕심도 없다. 앞으로 함께 걸어갈 인생길 지금처럼 서로 의지하며 건강하게 살고픈 마음만 간절하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