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숲으로 들어서기
문학의 숲으로 들어서기
  • 충청타임즈
  • 승인 2007.08.09 2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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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은 유려한 문학의 숲이다. 옥천(沃州)이라는 지명은 '강물이 족하여 기름진 땅'이라는 뜻을 은유적으로 함축하고 있다. 기름진 강물은 풍족한 감수성으로 사람의 품성을 적셔주기에 모자람이 없다. 산기슭이 달라지는 곳마다 숲을 지어 놓고, 산짐승과 새들, 물고기, 그리고 선한 곤충을 모아 사람을 부른다. 조만희는 옥천지역의 수필 기행을 통해 풀꽃과 돌멩이 하나의 그 예사롭지 않은 의미들을 적시하고 있다.

숲으로 가면 해와 달과 별, 그리고 바람과 서리와 이슬. 또한 온갖 조수충어(鳥獸蟲魚)들을 더욱 진지하게 만날 수 있다. 멀리서 보면 하나의 풍경이지만 가까이 가서 보면 많은 생명들이 살아가는 모습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거센 바람을 감당하지 못하고 마침내 몸을 누인 고목의 쓸쓸함 곁에서 미세한 바람에 미리 몸을 흔드는 작은 나무이파리는 세월의 무상함을 더욱 느끼게 한다.

작은 곤충들이 미묘한 사랑법으로 숲에 아름다움을 더하는 사이 거미줄을 벗어나지 못한 날개부치들의 죽음은 숙연한 숲의 법칙을 만든다. 그들의 삶이 다른 만큼 죽음의 빛깔도 다르다. 그러나 아무에게 변명하지 않는 죽음들은 숲의 정신이 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문학은 길 없는 숲속을 가는 것과 다르지 않다. 어떤 사람은 곧장 정상으로 줄달음친다. 높은 곳에는 바라보기를 기다리는 아름다운 능선들과 하염없는 낙조와 흘러간 기억을 충동질하기에 충분한 구름의 행렬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어떤 사람은 작은 들꽃의 개화 앞에 머물러 한나절을 넘긴다. 풀잎은 위로 지나고 큰 나무를 돌고 큰 바위를 또 돌고, 계곡물을 따라 넘거나 우회해도 지치지 않는다. 그러나 뜻밖에 만나는 절벽은 더 이상의 전진을 거부한다. 숲은 이 엄숙한 머뭄을 통해 질주하는 세대들에게 역사의 푸른 제복을 입힐 때도 있었다.

숲은 스스로 길을 열고 누군가 오라고 부른다. 사람마다 모두 숲의 목소리를 다르게 듣는 게 분명하다. 그렇다면 아직도 옥천이라는 문학의 숲에 깃들어 있는 정지용의 시혼(詩魂)은 숲의 소리를 어떻게 수용하고 있을까 그리고 숲에 어떠한 길을 지어 놓고 갔을까

지용은 인간을 극복하기 위해 숲으로 가려 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것으로 숲에서 서정을 구하려 한다. 그 시세계에서는 인간애와 자연애(自然愛)가 동일한 가치를 이룬다. 가정이다. 산책을 시작하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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