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
기다림
  • 장민정 시인
  • 승인 2022.03.22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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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장민정 시인
장민정 시인

 

고대 중국의 시가를 모아 엮어 만든 경전 중 서경에 수록된 시 구절에 일일여삼추(一日如三秋) 란 구절이 나온다. 남편이 외국 사신으로 멀고 먼 타국에 가서 돌아오지 않는지라 그 부인이 바구니를 들고 나가 나물을 뜯고 칡뿌리를 캐며 남편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던 애타는 마음을 빗대어 쓴 시 속 구절이다

빨리빨리 속전속결이 우리 민족성이라고 하는 자들이 있어선지 모르지만 우리는 一日如三秋보다 일각여삼추(一刻如三秋)가 더 익숙하다는 생각이 든다. 한 시간의 기다림이 삼 년처럼 길게 느껴지는 심사, 온갖 상상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걱정과 애태움과 지루함이 수만 겹 쌓인 기다림이라는 것, 차마 못할 짓이긴 하지만 고스란히 인내해야 좋은 결과가 있는 것.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기다림마저 잃었을 때에도 /너는 온다// 다급한 사연 듣고 달려간 바람이/ 흔들어 깨우면// 눈 부비며 드디어 너는 온다 / 더디게 더디게/ 마침내 올 것이 온다.// 너, 먼 데서 이기고 돌아온 사람아.//

이성부 시인의 <봄>을 얼마나 흥얼거렸는지 모른다. 지난 겨울은 혹독했다. 일각이 여삼추까지는 아닐지 모르지만 동지가 지나고 겨울이 깊어질수록 우리는 애타게, 힘들게 봄을 가다린다.

어제는 종일 비가 내렸다. 올해 들어 처음 비다운 비, 바람도 불지 않고 조용하게 자분자분 대지를 적시며 내리는 봄비를 바라보면서 나는 `드디어!`라는 말을 가만히 내뱉는다.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봄의 시작이다. 드디어!

'기다리면, 결국, 봄은 오고야 마는 것!…'. 이렇게 혼자 지껄이는데 문득 서정주 시인의 안타까운 탄식의 소리가 마음을 친다. “적어도 일제 치하가 이백 년은 갈 줄 알았다!” , “해방이 그토록 빨리 올 줄 몰랐다”.

국민 8~90%가 창씨개명 했다는 통계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모든 국민이 일제의 폭정을 그저 묵묵히 따랐다는 증거다. 숨 쉬는 것 말고는 모두 일제의 허락을 받아야 했다는 엄혹하고 암울한 36년, 생각해 보라, 얼마나 긴 긴 세월인가? 보통 사람 누구라고 해방을 꿈이라도 꾸었겠는가?

“해방이 그토록 빨리 올 줄 몰랐다” 일제 치하가 200년은 갈 것이라 믿었기에 그는 <마쓰이 오장 송가>며 <항공일> <최체부의 군속지망> 등 그들의 입맛에 맞는 찬양시를 서슴없이 지어 바쳤던 것, 그는 기다리다 지쳐 기다림을 포기한 대가를 혹독하게 치른 시인이라 할 것이다. `그의 시적언어는 한국어가 갖고 있는 표현의 가능성을 최대한으로 보여주는 언어다'라고 평론가 김우창은 말했고 `어떤 말이나 붙잡아 늘리면 그대로 시가 되는 경지에 이른 요술사'라고 유종호 평론가가 말했듯, 그는 유일하게 특출한 시인이었다.

김소월, 한용운, 정지용, 백석, 윤동주, 등등 시인들은 고작 한두 권의 작품을 남기고도 역사 속에서 찬란한 빛을 내고 있는 데 반해 서정주 시인은 작품마다 뛰어난 성취도며 우리말 어휘를 가장 많이 구사한 보물 같은 15권의 시집을 남기고도 기회주의자요 반역자란 주홍글씨가 그의 수식어가 되었다.

항일운동이나 빈민운동이며 일본교육 거부 백지동맹 등등 피 끓는 젊은 날의 고뇌에 찬 행동들은 빛을 잃었다. 유약하고 비굴한 기회주의자 반역자로 역사에 남은 서정주. 밤이 깊으면 새벽이 멀지 않고, 아무리 혹독한 겨울이라도 봄에 밀려난다는 진리, 一刻이 如三秋처럼 지난한 고통일지라도 감내했어야 했다. 그는, 죽을 만큼 힘들어도 죽도록 기다렸어야 했다. 적어도 시인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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