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는 소리
봄이 오는 소리
  • 전영순 문학평론가
  • 승인 2022.03.22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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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전영순 문학평론가
전영순 문학평론가

 

단비가 내린다. 아파트 뜰에 줄지어 서 있는 벚나무와 버찌나무 우듬지를 토닥인다. 금세 연노랑 봄이 성큼성큼 다가오는 것 같다. 하늘은 건조한 세상에 비를 내리고, 대지는 생명을 밀어 올리는 계절이다. 때 이른 청매실나무와 산수유는 며칠째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다. 몇 밀리의 창을 두고 안과 밖을 바라보며 하루를 연다.

이른 봄, 흙과 낙엽이 동색인 뒷산을 오르다 흑갈색 속에 숨어있는 노란색을 본다. 나비가 세상에 나와 활동하기에는 터무니없이 추운 날씨, 괜스레 노란색이 있는 쪽으로 관심이 쏠린다. 투명한 색상을 지닌 노랑나비다. 짓궂게 손과 막대기로 건들어봐도 움직이지 않는다. 모든 것이 시기가 있는데, 얼마나 세상 구경을 빨리하고 싶었으면 나왔을까. 사회 속으로 일찍 뛰어든 가출한 여중생을 보는 느낌이다. 한참 지켜보다가 낙엽을 덮어주고 가던 길을 재촉했다. 어설픈 이른 봄이다.

동해안 일대와 아르헨티나 남동부에서 일어난 산불로 화상을 입은 산들이 앓아누웠다. 화산폭발을 연상케 하는 산불이다. 자연 발생이 아닌 누군가의 부주의로 일어난 사건이라 지켜보는 사람 가슴에까지 불똥이 튀어 아직도 뜨끔하다. 최근 일어난 동해안 산불이 89시간 52분 만에 진화된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산불 중에 역대 3번째라고 할 정도니, 그 피해 또한 얼마나 클까. 아르헨티나 북동부에서 일어난 산불은 서울 면적의 13배라고 한다. 가득히나 지구촌이 코로나로 흔들리고 있는데 생태계 불균형으로 지구가 얼마나 더 몸살을 앓아야 할지 걱정이다. 아르헨티나 경우 북동쪽에서는 산불로, 북서부 쪽에서는 집중호우로 물난리로 난리다. 물과 불이 넘쳐나는 이른 봄이다.

봄이 문전에서 서성이니 눈과 발이 밖을 향한다. 자동차 기름값이 오르니 안 가던 곳도 더 가고 싶어진다. 가축 농가에서는 사룟값이 올랐다고 불만의 소리가 나오고, 자동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은 유가 상승으로 주유소를 지날 때마다 뚱뚱 거린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유럽을 포함에 주변 국가들이 큰 피해를 보고 있다는 뉴스로 뜨겁다. 갈등의 내막은 잘 모르지만, 동서를 막론하고 고전처럼 부르짖는 존재해서는 안 될 전쟁의 만행이 아닌가? 신은 인간에게 하지 말아야 할 덕목 중에 가장 큰 죄목을 전쟁에 둬야 할 것이다. 우리가 얼마나 갈구하는 자유와 평등인가. 푸틴은 죽을 때 눈을 감고 죽을까? 뜨고 죽을까? 대포 속에 아이의 울음이 붉어지는 이른 봄이다.

연일 늘어나는 코로나 확진자의 수는 2년이 지나도 수그러질 줄 모르고 상승한다. 죽음과 삶의 갈림길에 선 환자들이 병원에 갈 데가 없다고 하소연한다. 산모는 분만할 장소가 마땅하지 않다고 아우성이다. 가까이에서 들려오는 코로나 확진자 소식은 거부할 수 없는 환경과 맞닥뜨렸다. 이제 함께 살아야 할 이웃이 된 코로나, 사람과의 경쟁이 아니라 병균과 경쟁해야 할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코로나 5차 확산으로 사망자 수가 급증하는 홍콩을 보면서 살기 위해 사투하는 것보다는 죽기 위해 사투하는 편이 훨씬 낫겠다.

오늘같이 추운 날에는 차라리 눈이 내렸으면 좋겠건만, 비가 내린다. 때아니게 불어닥친 산불과 우크라이나 사태, 아직도 진행 중인 코로나는 예측 불가한 기후처럼 우리의 삶의 방향을 전환한다. 아무리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고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략해도 세상은 정의로운 편에 서서 승전고를 울린다. 잘못된 것을 보고 반면교사 삼아 우리는 슬기롭게 자리를 잡아간다. 호모사피엔스가 지혜로운 계절을 우리에게 보낸다는 소식이다. 따뜻한 봄은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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