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이 들려주는 문화재 이야기
녹이 들려주는 문화재 이야기
  • 류호철 충북도문화재연구원 유물관리팀장
  • 승인 2022.03.20 19: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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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시선-땅과 사람들
류호철 충북도문화재연구원 유물관리팀장
류호철 충북도문화재연구원 유물관리팀장

 

우리는 생활 곳곳에서 금속으로 만들어진 제품을 사용하고, 이러한 물건들이 녹이 슬어가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가장 흔하게 사용하는 철에 발생하는 붉은 녹은 우리에게 익숙하기에, 누구나 철에 생긴 녹을 보면 원래의 금속색이 남아 있지 않아도 철제품임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녹이라는 것은 금속이 물, 산소 등과 만나 만들어지는 부식물이므로, 요건에 따라 매우 다양한 색깔과 형태로 나타난다. 예를 들어 귀금속 중의 하나인 은(Ag)은 공기 중의 물질들과 반응하여 녹이 슬게 되는데, 이 부식물들의 색이 주로 검은색을 띠게 된다. 이로 말미암아 우리는 은이 녹슬면 검게 변한다고 인식하고 있으며, 예전에는 음식 속의 독을 판별하기 위해 은수저 등을 사용하기도 하였다.

그렇지만 녹이 슨다고 해도 부분적으로 조금씩 변색되기 시작할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귀금속인 은이 까맣게 변하도록 두지 않을 것이므로, 모든 표면이 검게 변해버린 은을 볼 수 있는 경우는 드물 것이다. 만약 이렇게 변색된 은제품이 눈앞에 있다면, 은으로 만들었다는 것을 눈으로 쉽게 구분할 수 있을까.

그런데 이렇게 표면 전체가 검게 변한 상태의 은을 간혹 유물 중에서 발견할 수 있다. 은제 유물들의 경우 땅에 묻힌 상태에서 녹이 슬 경우, 하얀색이나 연보라색을 내는 녹이 생겨나기 쉽고, 이러한 색깔의 녹이 발생한 유물은 은으로 제작한 것임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러나 간혹 어떠한 이유로 공기 중에서 녹이 난 것처럼 검은색의 녹이 생겨날 수도 있어, 이러한 경우 검은색에 가까운 표면색으로 변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렇게 모든 표면이 검게 변해버린 유물은 이것이 어떤 금속으로 만들어진 것인지에 대한 혼동을 일으킬 수 있다.

예전에 이러한 상태의 동곳(뒤꽂이)이 출토되어 보존처리를 한 경우가 있었다. 흔히 출토되는 동곳은 청동으로 만들어진 것이 대다수이므로, 처음엔 이 역시 청동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판단했었다. 청동제품의 경우, 녹이 날 경우 표면이 검은색을 띠는 경우가 흔하므로, 주의 깊게 살피지 않는다면 충분히 혼동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 경우 보존처리를 하는 과정에서 표면의 미세한 차이를 알아내게 되어 청동으로 만든 것이 아닌 은으로 만든 동곳임을 알 수 있었다. 이처럼 정밀한 관찰이 이루어질 수 없는 환경이라면 그대로 청동제 유물이 되어버리는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생각지 못한 요건에서 생겨난 녹은 그것을 만든 재료에 대한 혼동을 주기도 하고, 오해를 일으킬 수도 있다. 철로 만든 제품이 흔치 않은 푸른 녹으로 덮여 있거나, 작은 청동제품이 근처 철제품에서 흘러나온 붉은색 녹물로 뒤덮여 버린다면 쉽사리 원래의 재료를 떠올리긴 어렵기 때문이다.

물론 드문 상황이고, 녹 이외에도 제작한 재료를 짐작할 수 있는 요소들은 많다. 하지만 그러한 정보들을 활용할 수 없거나, 혼동될 수 있는 상황이라면, 위와 같이 예외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사실들을 기억해두는 것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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