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처음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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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은진 한국독서심리상담학회장
  • 승인 2022.03.17 19: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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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그릇에 담긴 우리 이야기
신은진 한국독서심리상담학회장
신은진 한국독서심리상담학회장

 

3월에 어울리는 단어는 `두근두근'이 아닐까 싶다. 거의 모든 학교에 입학식이 있고 새 학년, 새 선생님, 새 친구 등 첫 만남이 우리를 기다리기 때문이다. 첫 경험은 설렘 뒤에 두려움이라는 그림자를 가지고 있다.

`이슬이의 첫 심부름(쓰쓰이 요리코 글·하야시 아키코 그림·한림 출판사)'은 1991년 출간된 나이 든 그림책이지만 언제 보아도 새롭고 좋다. 이슬이는 다섯 살이다. 오늘, 엄마는 이슬이에게 혼자 심부름을 다녀올 수 있는지 묻는다. 이슬이는 “응, 할 수 있어. 나도 이제 다섯 살인걸.” 하며 집을 나선다. 늘 엄마와 가던 길인데 혼자 가는 길은 처음 가는 길처럼 낯설다. 자전거가 오면 한쪽으로 비켜서기도 하고 엄마와 하던 것처럼 준비, 땅 뛰어도 가본다. 엄마와 함께일 때는 즐거운 나들이였는데 어라, 넘어지기도 하고 마음은 잔뜩 긴장된다.

도착한 가게에는 마침, 주인이 없다. 크게 소리 내지만 정작 모기처럼 작은 소리가 나온다. 동전을 쥔 손에는 땀이 흥건하고 가슴은 쿵쾅쿵쾅, 넘어진 무릎은 빨갛게 물들었다. “어머나, 꼬마 손님 알아보지 못해 미안해요.” 주인 아주머니의 말 한마디에 눈물 한 방울이 똑 하고 떨어진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언덕길 아래 동생을 안고 손을 흔드는 엄마가 보인다.

아마도 이슬이는 엄마를 본 순간, 쿵쾅거림도 발걸음도 호흡도 모두 제자리로 돌아왔을 것이다. 불안하고 무섭고 두려운 마음은 이슬이를 넘어지게 하고 호흡을 빠르게 하고 제소리를 내지 못하게 했다. 그런데 그 마음을 알고 엄마가 기다린 것이다. 한 번도 경험한 적 없는 것을 처음 경험하는 아이에게 엄마가 그 마음을 알고 있다고, 이해한다고 돌려주는 것이 진정한 공감이다. 그럴 때 모든 것은 빨리 제자리로 돌아와 안정을 찾는다.

우리는 주어진 과제를 잘 해내고 싶은 욕구가 있다. 무엇이든 척척 해내어 자신과 타인에게 괜찮은 사람이 되고 싶은 소망은, 나로 존재하는 것을 위한 중요한 경험이다. 하지만 처음 경험하는 일이거나 이전과는 다른 일을 하는 것은 도전이고 모험이다. 나는 독립적이고 주체적이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긍정적인 말이지만 그 이면에는 혼자 해야 한다는 강한 신념 안에 무거운 책임도 들어있다. 그래서 생각이 많고 오랜 시간 준비하며 실수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과제 수행을 위한 적당한 에너지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게 된다.

그 정도로 충분하다고, 최선을 다했으니 되었다고 안심시키는 자기 대상의 부재가 이유다. 자기 심리학자 하인즈 코헛은 인간이 생존을 위해 산소가 필요하듯이 심리적으로 자기 대상의 반영을 지속해서 필요로 한다고 말했다. 자기 대상은 안정감을 주면서 불안과 두려움을 희석해 준다. 첫걸음마를 떼는 아이가 넘어지면 가장 먼저 엄마를 본다. 엄마의 눈은 아이의 긴장과 불안을 읽어주고 안심시킨다. 아이는 `아, 괜찮구나. 잘하고 있구나.' 안심하고 다시 도전한다.

우리는 자기 대상을 통해 자기에 대한 감각을 갖게 된다. 자기가 형성되는 과정에 꼭 필요한 요소다. 공감과 반영의 자기 대상이 부재했던 삶은 자기 응집의 실패로 자기 정체성의 혼란을 가져올 수 있다. 힘든 것을 해낼 때 경험하는 불안과 두려움을 처리하지 못해 시작조차 하지 못하는 경우가 되기도 한다.

누군가의 자기 대상이 되어주고 나 자신에게도 자기 대상이 되어주기 위해 나는 오늘도 바쁘다. 우리가 살면서 만나는 처음 순간에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 응원하며 지켜보는 누군가 있다는 것을 잊지 말자. 손만 내밀면 다가와 잡아줄 누군가 따뜻한 눈빛으로 당신을 지켜보고 응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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