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3)
산책(3)
  • 반영호 시인
  • 승인 2022.03.17 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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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반영호 시인
반영호 시인

 

봄이 오면 나는/활짝 피어나기 전에/ 조금씩 고운 기침을 하는/꽃나무들 옆에서 덩달아/봄 앓이를 하고 싶다//살아 있음의 향기를/온몸으로 피워 올리는/꽃나무와 함께 나도/기쁨의 잔기침을 하며/조용히 깨어나고 싶다//봄이 오면 나는/매일 새소리를 듣고 싶다//산에서 바다에서 정원에서/고운 목청 돋우는/새들의 지저귐으로/봄을 제일 먼저 느끼게 되는 나는 바쁘고 힘든 삶의/무게에도 짓눌리지 않고/가볍게 날아다닐 수 있는/자유의 은빛 날개 하나를/내 영혼에 달아주고 싶다//봄이 오면 나는/조금은 들뜨게 되는 마음도/너무 걱정하지 말고/더욱 기쁘고 명랑하게/노래하는 새가 되고 싶다//봄이 오면 나는/유리창을 맑게 닦아/하늘과 나무와 연못이/잘 보이게 하고 또 하나의/창문을 마음에 달고 싶다



이해인 수녀님의 시 “봄이 오면 나는”이다. 봄은 아직 멀었다고만 생각했는데 어느 듯 봄이다. 엊그제 봄을 재촉하는 비가 내리더니 골짜기에서는 잔설이 녹아 흐르는 물소리가 졸졸졸 들리고, 산야에는 이곳저곳에서 새싹들이 움트고 있다. 자연의 신기함이 산책의 발걸음을 더디게 한다.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의 평화랜드 입구 기념관 앞에 낯익은 비가 세워져 있으니.



청풍명월 복된 땅/그늘재 품어 안은 보덕산 모태에서/찬란한 서광 뿜어 올라/오대양 육대주를 아우르는/세계의 영봉 우뚝 섰네/어렸을 적 품은 뜻 외교관에 심어놓고/곧은 신념 꾸준한 노력/한 길로 가시더니/일백아흔두 나라/사랑으로 품으시는 태산이 되셨어라/남다른 숭조 일념 만인의 본보기요/변함없는 고향 사랑 축복의 근원일세/인자한 그 미소 국제분쟁 평정하고/청백한 그 인품 세계평화 꽃 피우리/장하고 장하여라/중원의 말갈기 세차던 백의민족/광주반씨 문헌공 20세손/반기문 유엔사무총장/겨레의 이름으로 비노니/웅비의 나래 펴고/유구한 새 역사에 길이길이 빛나소서/



`몸으로 우는 사과나무'로 유명한 수필가 반숙자 선생이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의 취임을 축하하는 `세계를 품으시는 태산이여'라는 기념비다. 서울에서 창작활동을 하다가 낙향한 선생님은 나와는 종친으로 1995년도에 처음 만났다. 중앙으로부터 음성문학을 인준 받는데 많은 힘을 쓰셨고 초대 회장을 지냈다.

그 후 예총 설립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그가 대단한 분이란 걸 알게 되었다. 음성예총의 초대회장인 반기태 회장과 예총 설립을 위하여 한국예총 본부가 있던 마로니에 공원을 여러 번 방문하였었다. 5개 협회가 있어야 인준된다는 규정이 있다. 하지만 우리 음성은 문인, 국악, 미술의 3개 단체밖에 설립되지 않았기에 인준조건을 갖추지 못한 상태였었다. 우리는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실망하지 않고 끈질기게 졸라대며 무모하리만치 쫓아 다녔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패기가 어디서 나왔었는지….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가서 졸라보자고 올라갔을 때 그렇게 만나기 어려웠던 사무총장을 만났다. 사무총장은 시인 최절로 선생이었다. 하지만 한마디로 “규정상 안 되는 일은 안됩니다.”라는 말에 얼마나 낙심했던지. 그래도 총장실을 나오지 않고 버티자 “어디서들 왔오?”라고 묻기에 음성이라고 말하자 “오! 그래요? 그럼 한국 3대 수필가 반숙자 선생의 고향이로군” 하며 안부를 물었다. 나는 반숙자 선생이 우리나라 3대 수필가인줄은 그때 알았다. 덕분에 음성예총은 3개월 후 인준되었으니 한국 87번째로 탄생한, 3개 단체만으로 인준된 전국 최초의 예총이 되었다.

세월이 흘러 이젠 여든을 넘으신 노 작시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타박네'에서 순댓국에 막걸리를 마시며 문학을 논했으나 이제는 기력이 쇠하여 주일에 한 번 제자들에게 수필 강좌를 하고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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