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집2
엄마의 집2
  • 이재정 수필가
  • 승인 2022.03.16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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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이재정 수필가
이재정 수필가

 

저만치 불빛이 보인다. 어둠을 가르고 건너온 빛은 낯선 환경에 놓인 아기의 눈빛처럼 흔들린다. 달무리 지듯 희뿌옇게 번지는 빛은 초봄의 살 에이는 아릿함으로 와 닿는다. 밤마다 불빛을 좇아 오래도록 마음이 쉬 돌아오지 못하는 곳. 거기에 91세의 어머니가 계신다.

큰아들네와 40년을 함께 살았다. 다리가 불편하여 처음에는 유모차를 밀고 다니셨다. 경로당에는 유모차 부대라고도 불릴 만큼 그런 친구분들이 많았다. 어느 날부터 줄어들더니 몇 명이 남지 않았다. 하나, 둘 요양원에 가고 돌아가시면서 친구가 없어졌다. 그러다 지난 1년을 노인주간보호센터인 `노치원'을 다니셨다.

유치원 아이들처럼 아침에 차가 와서 모셔가고 저녁에 집에 데려다준다. 이마저 힘들게 되자 어머니는 결단을 내리셨다. 자신이 더는 자식에게 폐 끼치기 싫어서 스스로 선택한 길이다. 형제들도 큰형에게 더 이상의 부담을 주는 건 무리라는 걸 인정했다. 돌아가신 친정엄마도 마지막엔 요양원에서 보냈듯 어쩌면 당연한 이치인지도 모른다. 나중에 나조차도 가야 할 곳이지만 자꾸만 죄스럽다.

내가 모시겠다고 선뜻 나서지 못했다. 직장에 다녀서 바쁘다는 핑계로, 몸이 약해서 제대로 케어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나를 합리화 시켰다. 그이도 미안한 마음을 대신해 어머니를 조금이라도 안심시켜 드리려 애를 쓰는 모습이 안쓰럽다. 훤히 보이는 우리 아파트를 손으로 가리키며 가까이에 아들이 살고 있음을 누누이 강조한다.

Y요양원은 우리 집에서 차로 5분 거리에 있다. 그이는 아침, 저녁으로 어머니의 전화를 받는다. 내가 돌아가신 엄마께 그랬던 것처럼, 내가 아들에게 그러는 것처럼, 첫 말은 식사했느냐는 말이다. 나이가 들면 반대가 된다. 부모가 자식을 챙기는 것이 아니라 지식이 부모를 챙겨야 하는 게 섭리임에랴. 속이 좋지 않아 계속 죽을 먹고 있어 기운이 없고 머리가 아프다고 해서 철렁 내려앉는다. 그 소식에 둘째 아주버니는 약을 처방하러 가기로 했다. 코로나로 단절된 요양원은 귀동냥으로만 안부를 듣는다.

지난 일요일에는 그곳에 갔다. 뵙지 못하고 마당에서 어쩔 수 없이 비대면으로 만났다. 2층 창으로 밖을 내다보시고 전화로 할 말을 나누었다. 멀리서 계시는 어머니의 표정을 볼 수가 없다. 좀 안정이 되었는지 알고 싶지만 답답하고 안타까울 뿐이다.

모두의 일상을 깨버린 코로나가 어머니와의 사이에도 장벽을 만들었다. 이 상황이 빨리 끝나 자유로이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 평소 잘 드시던 음식도 싸가서 같이 먹고 하루 종일 어머니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싶다. 수도 없이 들은 지난 일들도 새로 듣는 것처럼 맞장구를 쳐주고 싶다.

지금은 어머니가 적응할 시간이 필요하다. 한순간에 아무도 없는 섬에 혼자 갇힌 것 같은 처연함에 얼마나 헛헛했을까. 비록 자처해서 나선 길일지라도 마음은 빈 들판처럼 허허로울 것이다. 돌아가신 친정엄마도 고통을 이겨내느라 몸에 이상이 왔었다.

병원에 입원하리만큼 고열로 끓었다. 병문안을 갔을 때만 해도 집에 데려가 달라고 사정을 하셨다. 그걸 독하게 외면하고 집으로 오는 내내 가슴이 미어졌다. 그러던 엄마가 포기를 한 것일까. 퇴원할 무렵에 다 내려놓으신 것 같다. 다시 옮겨간 요양원에 가서 본 엄마의 얼굴은 아기처럼 해맑아서 눈물이 났다. 그 후로 내 마음도 함께 평화로워졌다.

아마, 어머니는 지금 혹독한 외로움과 사투중이리라. 살을 저미는 서러움이 도둑놈 가시처럼 들러붙어 괴롭힐지도 모른다. 자신이 그 가시를 억척스럽게 떼어내야만 비로소 마음이 편해지시리라. 안으로부터의 싸움이 얼른 지나가기를 바래본다. 비로소 편안하게 쉴 수 있는 어머니의 집이 되기를 염치없는 기도를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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